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 퇴계 귀향길 5일차 4
선두에서 연세대 철학과 교수이자 국제퇴계학회 이광호 회장님과 나란히 걸었다. 교수님은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님의 안동 일정을 대신하여 오늘 집례관을 맡으셨다. 지난 둘째날 강남 봉은사 입구 사거리에서 인사를 드린바 있어 더욱 반가운 마음에서 교수님은 걷는 내내 질문이 이어졌다.
"명재 윤증 선생 이후 선조 중에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7대 선조이신 반호(盤湖) 윤광안 선생께서 그저께 다산 유적지에도 가보았지만 다산선생과 함께 조정에서 초계문신으로 활약한바 있습니다. 또한 다산초당에 사의제가 있다면 반호선생은 경상관찰사 후 반호정사(盤湖精舍)와 삼의당(三宜堂)을 남겨주셨는데 삼의당은 밭 갈기 좋고, 낚시하기 좋고, 독서하기 좋다는 세 가지 마땅함을 담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반호정사 현판 이야기를 꺼냈다. 1960년대 초 도난당한 현판이 훗날 경매에 나왔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님께서 낙찰받아 서울 논현동 수졸당(守拙堂)에 보관하시다가 후손의 간절한 요청에 흔쾌히 돌려주셨다는 일화였다. 반세기 만에 현판이 충남 부여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 드리자 교수님께서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시더니 한말씀 하신다.
"유홍준 중앙박물관장과는 아주 깊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유 관장께 전화를 넣으셨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만약 내가 과장이라도 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들통나지 않았을까?
사실 즉석 전화는 내게 더욱 큰 영광이었다. 반호정사 현판을 돌려주신 유홍준 전 청장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청장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하셨을 때 축하의 난(蘭)을 보내드리며 그 예를 갖춘 바 있었다. 그 인연 등을 겸사 오늘 이포 길 위에서 이광호 교수님을 통해 다시 이어진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남한강 이포 길 위에서 역사가 실시간으로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집례관이신 교수님께 유홍준 전 청장님께서 즐겨 쓰시는 문구로 감사의 예를 갖추었다.
"평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귀(名句) 중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였는데, 그 상수 중의 상수가 바로 이광호 교수님이십니다."
칭찬은 역시 좋은 것. 노교수님께서 허허 웃음을 지으셨다. 그 순간을 응원하려는 듯, 남한강 위로 기러기 두 마리가 멋지게 하늘로 비상했다.
드디어 배개나루에 닿았다. 퇴계 선생이 하룻밤을 묵으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그 자리에서, 나 또한 오늘 하루를 내려놓았다.
걷기를 마친 후 재현단 일행은 기천서원(沂川書院)으로 향했다.
퇴계 선생과 인연이 깊은 모재 김안국 선생 등 여러 선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광호 교수님과 단 둘이 사당에 들어서 향을 피우고 사배(四拜)를 올렸다. 삼베옷 차림으로 일일 퇴계로서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발목의 통증도, 버스를 탄 부끄러움도 모두 사라졌다. 오늘 이 길을 걸어온 모든 순간이 이 한 번의 절 속에 담기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참으로 기이하고도 감사한 하루였다.
발목이 항복했지만 퇴계가 되었고, 등골이 오싹했지만 기러기가 비상했고, 배개나루에 닿았고, 사당에서 사배를 올렸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길은 여전히 이어진다.
2026.4.3 밤 10시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