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7일차 3,
강원도에서 충청도로, 경계를 넘다
경기도 여주, 강원도 원주, 충청도 충주, 고을이 만나는 자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삼도의 혼합된 강바람이 살랑 코끝을 불어왔다.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원주 29.1km 자전거도로 없음, 강천보 까지 20.5km, 간현 24.2km. 우리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이정표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溫故知新, 퇴계의 길 미래를 열다 밥차 앞 인증샷 및 맛있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십여 분 휴식을 마치고 다리를 건넌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강바람도 살랑살랑 시원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강 가운데 갈대 모래섬이 물살을 가르고, 충청도와 강원도의 양쪽 산자락이 강물을 품는다. 저 멀리 첩첩산중이 봄 안개 속에 잠겨 있다. 그 첩첩산중의 끝 무렵이 퇴계선생도 지나셨고 우리가 갈길일까!
스틱을 난간에 기대고 한참을 바라봤다. 퇴계 선생도 이 강을 분명 지나셨다. 기록이 그리 되어있다. 디시금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강물은 그 길의 여정을 더욱 알고 있을것이다.
남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고향 세도 반조원, 강 건너 강변에는 은빛 모래섬이 있었다. 지금은 금강 하굿둑으로 수면이 십 미터 이상 올라 그 모래섬이 잠겨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달랐다. 가을이면 갈대 사이로 민물 게들이 알을 낳으러 올라왔다. 시골에서는 "그이"라 불렀다. 밤이면 호롱불 밝혀 들고 은빛 모래섬을 뒤지며 그이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한강을 건너는 발걸음 위로 그 시절이 겹쳐온다.
내 고향 반조원의 은빛 모래밭. 아, 남한강 가에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커다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부터 충청북도입니다."
500m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강원도 사람이 순식간에 충청도 사람이 된 것이다. 충주시 앙성면, 퇴계 선생도 이 경계를 넘으셨을 것이다. 한 걸음이 도(道)를 바꾼다. 갓을 고쳐 쓰고 충청도 땅을 밟는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원도와 충청도로 나뉜다. 강이 경계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같은 민족, 같은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쪽 마을 사람, 우리 마을 사람"으로 인위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한편으로 유감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다.
내 고향도 그랬다. 논산시와 부여군,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갈렸다.
오늘 이 다리를 건너 충주로 가는 뚝방길을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강경 황산대교에서 나의 고향 세도면 반조원 리 442번지까지의 풍경과 똑같을까. 흐르는 강물 사이에 버들피리 나무들이 연초록 새순을 틔우고, 수십마리 오리 떼가 비상하고, 가끔 왜가리도 한 마리 서 있다.
자전거 길로 포장된 뚝방도로 사이로 은빛 물결이 춤을 춘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민가들, 소박한 시골집들, 고향집 가는 중간의 중산마을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가.
고향을 걷는 마음으로 걷는다. 퇴계 선생의 귀향길, 그 길을 따라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뚝방길 어느 쉼터에 잠시 멈춰 섰다.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충주댐 45km, 팔당대교 90.5km. 우리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숫자로 담담하게 적혀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재현단을 환영한다.
스틱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른다. 소처럼 묵묵히, 뒷걸음치지 않고. 충주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충주댐까지 45km 그 중간 쯤 도착
연수원에서 자고 내일은 충주관아 언덕까지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