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7일차 2편 — 주(州)의 길, 강물을 거슬러
소는 뒷걸음치지 않는다. 발목에 압박붕대를 감고 스틱을 짚었다. 우보천리, 그것으로 충분하다.
출발에 앞서 김병일 원장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셨다.
"우리 퇴계선생 귀향길 재현단은 토요일도 가고 일요일도 갑니다. 가야 하니까요.
왜냐하면 퇴계선생께서 14일만에 도산서원에 도착하셨기에 그길 그대로 재현하는 길이기때문입니다.
오늘은 경기도 여주에서 시작해 점심은 강원도 원주에서 먹습니다. 여주, 원주, 충주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다 '주(州)' 자입니다. 주는 작은 데 붙지 않고 큰 데 붙겠습니다. 남한강 가에 흘렀던 우리 한국의 중심 문화, 그것을 마음에 담아 천천히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주·원주·충주, 세 고을을 잇는 주(州)의 길, 그 말씀 한 마디에 오늘 하루의 무게가 실렸다.
2시간여 도로길의 경유하며 흥원창(興原倉) 유적지에 발을 들이자 옛 조운선(漕運船)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각선도본(各船圖本) 속 배, 그리고 1800년대 후반에 촬영된 두 돛의 황포돛배 사진.
저 배들이 이 강을 오르내리며 나라의 살림을 날랐다. 흥원창 전경을 담은 산수화 한 장,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그림 앞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코골이로 배정된 방을 나와 전전긍긍하던 둘째날 밤, 기꺼이 방을 내어준 이동신 별유사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한강 물류의 이야기였다.
북한강 남한강을 경유하여 집합된 물산의 ㅈ최종하역창은 서울의 경우 마포가 그 중심이자 정점이었다. 광진에서 시작된 물산이 마포에 이르러 집결했고, 서울의 곡물 창고인 경창(京倉)이 마포에 자리했기에 곡식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그 배들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한 견망대(見望臺)도 바로 이곳에 설치됐다.
경상도 쪽은 어땠을까. 안동을 중심으로 거둔 세곡은 충주를 거쳐 남한강을 이용 최종 서울로 올라왔다. 남해안 지역은 연안을 따라 이동한 뒤 바닷길로 마포에 들어왔다. 경상남도 지역은 낙동강을 따라 김해까지 내려온 뒤 해로를 돌아 마포로 향했다. 안동, 광주 등 내륙의 고을들은 세금을 거두어 모으는 집산지 역할을 했고, 모든 길은 결국 마포로 통했다.
저 멀리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원도 경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김병일 원장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4대강 사업으로 보를 막아 호숫가를 걷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걸어가던 그 자연 상태 그대로를 볼 수 있습니다."
강물이 제 길을 찾아 흐르고, 모래톱이 살아있고, 절벽이 강물에 그대로 잠긴다. 우리 조상들이 보았던 남한강이 여기 있었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바로 그 세곡선들이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스틱을 짚으며 천천히, 그러나 뒷걸음치지 않고 걷는다. 다시 충주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물결을 따라 철새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우리의 발걸음을 환영이라도 하듯 날개를 펼치는 저 새들, 퇴계 선생의 귀향길에도 저런 천사의 날갯짓이 있었을까. 선생도 이 강물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흐르는 강물은 답을 주지 않는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개발을 통해 자연재해를 막고 삶을 보존하는 것이 현명한 길인가. 4대강 유역 개발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그 길을 걸으며 오늘날 퇴계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 어떤 답을 주셨을까. 선생이 더욱더 그리워지는 흥원창에서의 여정이다.
2026.4.5. 11시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