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7일 차 4편 — 비내섬, 갈대의 울음
신발을 벗은 지 채 삼 분도 안 됐다.
"출발합니다!"
야속하다. 정말 야속하다. 발목이 아파 다른 일행보다 늦게 도착했다. 겨우 신발 벗고 숨 한 번 고르려는데 집행부가 벌써 출발을 재촉한다. 일어설 수가 없다. 발목이 아직 욱신거리는데. 집행부야,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되겠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집행부에게도 맡은 임무가 있다. 꾹 참고 신발을 다시 신는다. 스틱을 짚고 일어선다. 소는 뒷걸음치지 않는다.
신발을 다시 신고 일어서니 저 앞으로 뚝방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재현단이 저 멀리까지 길게 늘어서 걷고 있다. 왼쪽엔 연둣빛 새순을 터뜨린 수양버들, 오른쪽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누군가 우산을 펼쳤다. 햇볕이 제법 따갑다. 벚꽃이 머리 위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름답다. 그런데 일행들은 저만치 앞서간다. 벚꽃 구경할 틈도 없다.
강변 갈대밭 한가운데 흰 도포 자락이 점 하나처럼 서 있다. 위로는 벚꽃 가지가 드리우고, 앞으로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사방은 마른 갈대밭이다. 어느 유생이 홀로 강을 바라보고 있다. 퇴계 선생은 아니신지, 선생은 그럴분이 아니시다. 아니면 그 길을 따라 걷는 21세기의 유생인가.
알고 보니 쉬하는 뒷모습이었다. 한쪽 다리 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불과 휴식 7분도 채 남기지 못하고, 집행부도 어쩔 수 없고, 그양반도 참다참다 어쩔 수 없다. 퇴계 선생도 귀향길에 이런 순간이 있으셨을 것이다. 자연 앞에 유생도 평등하다.
비내쉼터 4km 앞 공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멈췄다. 음료와 빵을 손에 들고 발통증을 살폈다. 판단은 빨랐다. 남은 구간을 걷다가는 도산서원까지 완주가 위태롭다. 주최 측 차량을 빌려 4km를 달구지에 의존하기로 했다.
풀코스 완주의 꿈이 자꾸 마음과 어긋난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께 사배(四拜)의 예를 갖추는 것, 그것이 이 길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닌가. 소처럼 묵묵히, 그러나 현명하게. 버스에 오른다.
쉼터 오른쪽에는 수령 300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남한강 자전거길 비내섬 인증부스와 이곳에서 촬영한 광개토태왕, 전우치, 불의 여신 정이, 정도전 등 영화·드라마 포스터들이 즐비하다. 이토록 명성 있는 비내섬 주변 걸음을 패스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비내섬 이야기를 검색했다.
재현단 일행이 도착하는 동안 비내섬을 검색하다 충주시청 공식 블로그에서 마음 아픈 한 여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일부를 옮겨본다.
벼슬바위 위쪽으로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상여바위가 있다. 영남의 조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중 이 바위에서 기도하고 밤이 늦어 김 진사 집에 머물렀다. 그러다 그 집 외동딸과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며칠 뒤 선비는 과거를 보러 떠났고, 김 진사의 딸은 날마다 벼슬바위에 와서 기도했다. 덕분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된 조 선비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그 딸을 잊었고, 날마다 치성을 드리던 딸은 결국 죽고 말았다. 김 진사는 딸의 꽃상여를 선비가 있는 한양으로 보내주려고 남한강에 띄웠다. 그러자 갑자기 돌풍이 일면서 상여가 벼슬바위 꼭대기로 올라갔다. 죽어서도 선비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변치 않은 여인의 사랑이 바위가 되어 남았다는 이야기다.
상여바위가 슬픔을 안고 내려다보는 곳은 합수머리다. 앙성천이 남한강의 넓은 품에 안기는 순간이다. 두 물이 만나는 곳에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봉황섬이 자리한다.
버스 창밖으로 비내섬 갈대밭이 조용히 스쳐 지나간다. 그 여인의 사랑처럼, 갈대도 오늘도 조용히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중에서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비내길의 진면목을 알았다.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전국 최고의 명품길이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탄산온천 지대인 앙성온천광장에서 시작해 논과 밭, 과수원이 어우러진 농촌 풍경, 산수유 단풍나무 터널, 자연 그대로의 남한강과 한강 8경 능암리섬까지.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최고의 코스였다.
이렇게 좋은 길을 발목 하나 때문에 버스 창밖으로 흘려보내다니. 아깝고 또 아깝다. 다음에 반드시 두 발로 걷겠다고 다짐하며 창문을 닫는다.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비내길의 진면목을 알았다.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우리 마을 녹색길 베스트 10' 전국 최고의 명품길이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탄산온천 지대인 앙성온천광장에서 시작해 논과 밭, 과수원이 어우러진 농촌 풍경, 산수유 단풍나무 터널, 자연 그대로의 남한강과 한강 8경 능암리섬까지.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최고의 코스였다.
이렇게 좋은 길을 발목 하나 때문에 버스 창밖으로 흘려보내다니. 아깝고 또 아깝다. 다음에 반드시 두 발로 걷겠다고 다짐하며 창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