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재현 8일 차 2. 버스 안 역사 강의, 달리는 교실
출발지 가흥초등학교에 도착하기까지 20여 분, 나는 이한방 박사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렸다. 인문학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가진 분께 이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한 편 들려달라고. 그 깊은 지식을 버스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 아닐까. 2호차에 탑승한 인연으로 이 기쁜 시간이 열렸다. 정중한 부탁에 흔쾌히 수락해 주신 이한방 박사님의 이야기, 두 꼭지를 살펴본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강의가 시작되었다. 충주 일대의 지명과 역사를 꿰뚫는 이야기였다. 달리는 버스가 교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감사(監司)의 역할은 지역을 직접 돌아보며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새 감사가 부임하면 전임 감사와 교보선(交報線)에서 만나 업무를 인수인계했는데, 이를 순영체제(巡營體制)라 했습니다. 임기도 1~2년으로 짧았고, 자기 연고 지역에는 잘 보내지 않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청탁이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이 순영체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한 곳에 머물며 가끔 돌아보는 유영체제(留營體制)로 바뀌었습니다."
도명(道名)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그런데 도내에서 큰 사건이나 반란 같은 변고가 생기면 도명을 바꾸는 일도 있었다. 충청도가 공충도(公忠道)가 되기도 하고, 홍청도(洪淸道), 청홍도(淸洪道)로 불린 적도 있었다. 지명 하나에도 그 땅이 겪어온 역사의 부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기(京畿)의 '기(畿)'는 수도 주변의 땅을 뜻한다. 일본도 '긴키(近畿)'라는 말을 쓰는데, 오사카·나라 등 옛 수도가 있던 지역을 가리킨다. 충주 남한강 일대에는 가흥창(嘉興倉)이 있었다. 조선시대 세곡(稅穀)을 모아 한양으로 올려 보내던 강변 창고였다. 그 가흥창 터에서 오늘의 걷기가 시작된다.
버스 창밖으로 남한강 상류가 흘렀다. 어제 숙소로 오던 길에 언뜻 보았던 벚꽃 터널이 오늘은 우리의 걷기 길이 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역사를 듣고, 내리면 꽃길을 걷는다. 8일 차가 이렇게 펼쳐지고 있었다.
2026.4.6. 아침 8시 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