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8일 차 1, 새 반절의 시작

by 윤석구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8일 차, 새 반절의 시작



어제 32킬로미터를 걸어냈다. 긴 하루였다. 14일 일정의 꼭 반이 지났고, 이제 새로운 반절이 시작된다.


8일째 아침, 눈을 뜨니 하늘이 회색빛이다. 밤사이 이슬비가 스쳐 지나갔는지 주차장 바닥이 젖어 있다. 안개는 뒷산 중턱까지 내려앉아 붉은 벽돌 건물과 소나무들을 흐릿하게 감싸고 있었다. 퇴계 선생 귀향길을 걸으며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날씨다. 오전 중에 흐리다가 오후쯤 개인 다고 한다. 다행이다. 큰 비가 쏟아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아침이다.


어제 32킬로미터 일정 중 5킬로미터를 채우지 못했다. 발목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4월 12일 도산서원까지 완주하기 위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전략적 후퇴였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나마 27킬로미터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틱 덕분이었다. 몸무게의 30퍼센트를 두 스틱에 실으면서 발목의 부담을 덜었다. 비내길 구간 앞에서 4킬로미터를 쉬고, 다시 나머지 구간을 이어 걸었다. 말없이 제 몸을 내어준 스틱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스틱에는 공과(功過)가 있었다. 체중의 30퍼센트를 두 팔로 분산시켜 발목을 완충해 준 덕에 27킬로미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것이 공이었다. 그러나 밤새 두 팔이 끙끙 앓았다. 하루 종일 몸무게의 3분의 1을 떠받쳐 온 팔이 잠든 사이에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였다. 그래도 스틱이 있어서 고마웠다. 없었더라면 27킬로미터조차 어림없었을 테니까.



오늘의 여정은 어제 도착했던 가흥창 터, 가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충주 탄금대공원까지 20킬로미터 구간이다. 1569년 음력 3월 11일, 퇴계 선생이 가흥관(嘉興館)에서 잠시 머문 뒤 다시 배를 타고 달천(達川)을 거쳐 충주에 닿았다. 충주는 선생에게 낯선 땅이 아니었다. 1549년 풍기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중형(仲兄) 이해(李瀣)가 충청감영에 재임하고 있었고, 두 형제가 이 고장 인연을 함께 새긴 곳이기도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곱 시 반, 버스 출발 전 김병일 원장님의 아침 말씀이 있었다.
"7일 차까지 오신 분들은 이미 160킬로 미터가량을 걸어오셨습니다. 앞으로 전체의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어요. 배도 타고 차도 타는 구간도 있고, 멋진 용룡고개를 넘는 길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오늘 일과를 시작합시다."


마침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날씨는 약간 쌀쌀하지만 천천히 걸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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