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8일차 6. 충청감영에서 만난 선조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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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석구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8일 차 6. 충청감영에서 만난 선조의 자취



관아골 아트뱅크를 돌아 100여 미터, 육중한 충청감영 표지석과 망루가 눈앞을 압도했다. 충청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도 7대 선조 반호 윤광안 선생께서 충청관찰사를 역임하셨건만, 경상감영은 몇 번 가보았으면서 충청감영은 이날 처음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충청감영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을미의병과 충주성 전투 안내판, 충주읍성의 내력을 담은 충주축성사적비, 관아 건물들이 켜켜이 역사를 품고 서 있었다. 그러나 충주읍성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선시대 관아 부속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던 그 자리에 지금은 KT 건물, 구 우체국,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복원되지 못한 채 사라져 간 문화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충청감영 전문가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1569년 음력 3월 11일, 당시 충청감사였던 유홍(兪泓) 선생이 퇴계 선생을 극진히 모셨던 이야기였다. 서울 두뭇개에서 가흥까지 관선(官船)을 타고 오신 퇴계 선생을 가흥에서 마중한 유홍 선생은 환영 시를 지어 올렸다.


백세 흘러 도가 선생에게 있나니
북두 이남 드높은 명성이어라
임금님이 국정 맡기시려 하나
선생은 고향 강가에서 늙고 싶어라


퇴계 선생은 이에 화답하셨다.


물러나 쉬기를 빌어 임금께 하직하고
돌아감에 영남으로 향하노라
가흥관에서 술잔 주고받고
달천담 거슬러 배 저어가노라

이힌방 박사님과


가흥관에서 술잔을 나누고 달천(達川)을 배로 건너셨다. 오늘 우리가 걸어온 바로 그 길이었다. 그런 뒤 말을 타고 이곳 관아까지 오셔서 하룻밤을 묵으셨다. 청녕헌(淸寧軒)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건물이고, 그 옆 객사(客舍)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원이나 지나가는 손님이 머물던 곳이다. 퇴계 선생은 바로 저 객사에서 주무신 것으로 전해진다. 이튿날 음력 3월 12일 새벽, 선생은 시 한 수를 남기고 청풍을 향해 떠나셨다. 그로부터 엿새 뒤, 마침내 안동에 도착하셨다.


충청감영 경내를 거닐며 한 가지 사실이 더욱 또렷해졌다. 7대 선조 반호 윤광안(盤湖 尹光顔) 선생께서는 유홍 충청감사가 퇴계 선생을 극진히 영접하며 하룻밤을 모셨던 그로부터 230여 년이 흐른 1800년대 초, 충청관찰사로 이 땅에서 임무를 수행하셨다. 비록 그 무렵에는 충청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였지만, 선조께서 충청의 땅을 다스리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다시 220여 년이 흐른 2026년 오늘, 그 후손이 선조의 임무수행지를 직접 발로 밟으며 선조의 업적을 되새기고 있었다. 유홍 감사가 퇴계 선생의 귀향길에 깊은 예를 다했던 그 이야기를 듣는 이 자리에서, 선조의 자취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울러 기록해 둔다. 반호 선생께서는 충청관찰사에 이어 곧바로 경상관찰사로 부임하시어 대구 경상감영에서 선화당(宣化堂)과 징청각(澄淸閣)을 중건하는 큰 업적을 남기셨다. 두 감영을 연이어 맡으신 선조의 발자취가 오늘 이 충주 땅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2026.4.6. 2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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