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8일차 7, 퇴계 선생이 쏘는 커피 한

by 윤석구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8일차 7. 퇴계 선생이 쏘는 커피 한 잔


충청감영 방문을 마치고 재현단은 숙소에 도착했다. 신병주 교수님의 강연에 앞서 잠시 여유가 생겼다.
숙소 입구에 초록 커피 트럭이 서 있었다.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퇴계 선생이 쏜다!' 피식 웃음이 났다. 당시라면 커피 대신 녹차였겠지만, 오늘은 퇴계 선생 덕분에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는 셈이었다. 지친 발걸음에 따뜻한 한 잔이 스며들었다.


강당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병주 교수님이었다. 오래전 무섬마을, 부석사, 소수서원 등 역사탐방 시 강사로 해설해 주셨던 인연이 있는 분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가야금 삼중주가 울려 퍼졌다. 한복 차림의 세 연주자가 나란히 앉아 가야금 세 곡을 연주했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라는 글자와 함께 산수화 속 선비의 실루엣이 떠 있었다. 하루 종일 발로 걷고 귀로 듣고 눈으로 담아온 충주의 하루가 가야금 선율 속에 차분히 가라앉았다.


충주시 부시장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충주는 조선시대 팔도의 교통 요충지였다. 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과 연결되었고, 창고와 역원이 있는 물자와 사람의 집산지였다. 퇴계 선생께서도 바로 이 한강 수로를 따라 가흥에서 충주까지 귀향길에 오르셨다. 대유학자의 발자취가 충주 땅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교통의 인연 덕분이었다. 1569년 3월,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재현하는 행사가 올해로 어느덧 여섯 번째를 맞이했다. 오늘 이 행사를 계기로 안동시와 충주시의 문화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고, 대한민국의 유학 정신이 더 넓게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신병주 교수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주옥같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퇴계 선생의 생애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본격적인 강의에 신교수는 퇴계 선생은
1501년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나 생후 7개월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 박씨의 훈도 아래 총명한 자질을 키웠고, 20세 무렵 『주역』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쳐 평생 다병한 몸이 되었으나 학문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성균관에서 진사 회시에 급제하고 관계에 발을 들였으나, 선생의 뜻은 늘 산림에 있었다. 을사사화 이후 관직을 내려놓고 토계(兎溪)에 은거하면서 토계를 퇴계(退溪)라 고쳐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풍기군수 재임 중에는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20여 차례 관직을 사양하면서도 68세 노령에 어린 국왕 선조를 위해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하여 바쳤다. 1569년 마침내 귀향을 허락받아 오르신 그 길이 바로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이다. 이듬해 11월, 평소 사랑하던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단정히 앉은 자세로 생을 마치셨다.


천 원권 지폐 속 선비의 삶이 이렇게 깊고 장대했다. 오늘 충주 시장통에서 L군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1000원짜리에 나오는 분이잖아요." 그 학생이 이 강연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강연이 끝나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충청감영을 배경으로 유홍 감사와 퇴계 선생이 시를 주고받는 장면이 무대 위에서 살아났다. 흰 도포의 퇴계 선생이 뒷모습으로 걸어가고, 붉은 관복의 유홍 감사가 멀리서 배웅하는 이별 장면. 오늘 낮에 우리가 직접 발로 밟았던 그 마당이 저녁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다. 30년이 지나도 유홍 감사 부친의 행장을 지어 보내신 퇴계 선생의 극진한 사제지간이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났다.


연극이 끝나자 수행 취재 홍보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충청감사 등 고위 관리들이 퇴계 선생의 귀향길에 영접을 나온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세 가지로 답했다.


첫째, 퇴계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석학이셨고 당시 관리들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둘째, 모든 것을 스스로 물리치고 자발적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며 낙향하신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이셨다.


셋째, 충청감사 유홍과 퇴계 선생 사이에는 이미 깊은 인연이 있었다. 선생이 유홍 감사의 부친 행장을 직접 써주실 만큼 각별한 사이였기에 충청감사가 몸소 마중을 나온 것은 당연한 예였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걸으며 몸으로 배운 것들이 답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긴 하루였다. 벚꽃 터널을 걷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역사를 듣고, 충주 시내 한복판에서 우리은행 간판 앞에 서고, 대안학교 고등학생과 경(敬)을 논하고, 충청감영에서 7대 선조를 만나고, 가야금 선율과 연극으로 하루를 마쳤다. 발목은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오늘도 걸었다. 버스를 잠시 빌렸지만, 마음은 끝까지 재현단과 함께였다. 내일도 또 걷는다. 4월 12일 도산서원까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견인지종(堅忍至終).
굳게 참아 끝에 이른다. 오늘도 그렇게 걸었다.


20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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