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 귀향길 9일차 4편, 청풍(淸風), 도학자들

by 윤석구

퇴계 선생 귀향길 9일차 4편, 청풍(淸風), 도학자들의 땅



김경호 교수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누정은 인적 관계망의 아카이브라 했다. 그 말이 이곳 청풍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증명될 줄은 몰랐다.


1569년 퇴계 선생이 이곳에서 만난 이는 청풍군수 성암 이지번(李之蕃)이었다. 충청도 보령이 고향인 한산이씨 집안이 왜 이 깊은 산중 청풍 땅으로 들어왔을까. 그 배경에는 당대 국정의 최고 권위자 윤원형(尹元衡)이 있었다. 권력의 압박을 피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들어온 이지번. 도담 쪽에 먼저 터를 잡았다가 훗날 구담(龜潭)·옥순봉(玉筍峰) 쪽으로 이주했다. 그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퇴계 선생이었다.


이지번의 형제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도 같은 길을 걸었다. 토정비결의 저자로 세상에 알려진 그 역시 권력의 횡포를 피해 보령에서 이 내륙 깊숙이 들어왔다. 자기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청풍이 도학자들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퇴계 선생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이지번의 아들은 훗날 영의정에 오른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였다. 여섯 살 무렵부터 신동으로 소문난 이산해의 글씨 열 자를 받으러 많은 이들이 직접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540년대부터 이미 퇴계 선생과 이지번 집안의 인연은 깊어지고 있었다. 훗날 경복궁에 화재가 난 뒤 마지막으로 현판을 쓴 이도 바로 이산해였다.



퇴계 선생이 가장 아끼던 고제 중 한 사람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도 이 이야기 속에 있다. 예안 출신으로 퇴계 선생의 이웃이기도 했던 그는 1557년 단양군수로 부임하며 이 지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스승과 제자, 벗과 벗이 이 청풍 땅에서 만나고 또 만났다.


김경호 교수는 말씀을 맺으셨다.

사표(師表)란 무엇인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다. 스승만이 사표가 아니다. 지금 이 귀향길을 함께 걷는 친구도, 옆에 앉은 동료도 사표가 될 수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안동에 가까워질수록 이 길 위에서 스쳐간 만남들을 한번 되돌아보라고.


한벽루 너머로 충주호가 출렁였다. 저 물속 어딘가에 청풍의 옛 마을이 잠들어 있었다. 퇴계 선생이 이 땅에 남긴 것은 발자국만이 아니었다. 도학이라는 씨앗이 이 땅에 뿌려졌고, 그 씨앗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며 오늘까지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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