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 귀향길 9일 차 5편(260407), 누각 위에서 만난 세 분 <26.04.09. 좌충우돌 인생2막 92호>
강연과 연극이 끝나고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게 되었다. 한벽루 아래 마당은 비좁고 협소하여 일부는 누각 위로 올라가 촬영에 응했다.
사실 누각에 오르게 된 데에는 또 하나의 인연이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내가 앉은 의자 위로 멋지게 늘어진 솔방울 다섯 개 달린 가지 하나가 툭 하고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늘에서 천사의 편지가 또 왔구나 싶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단체사진을 찍으러 누각에 올랐다가 뜻밖의 보물을 만나게 되었다.
누각 상단을 올려다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현판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퇴계 이황 선생, 아계 이산해 선생, 서애 유성룡 선생, 세 분이 이 한벽루에 올라 남기신 시판(詩板)이었다. 마침 먼저 올라온 이한방 박사께서 석학 세 분의 시판이 있다고 코칭해 주셨다. 진행요원들이 빨리 탑승하라는 독촉에도 세 분의 시판을 사진 찍으며, 시간을 초월해 석학을 만난 마음에 정중히 인사드리는 마음 같았다. 다시금 누각에 천 번 만 번 잘 올라왔음을 느꼈다.
김경호 교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다. 누정은 인적 관계망의 아카이브라고. 그 말이 이 순간 온몸으로 느껴졌다. 퇴계 선생과 성암 이지번의 우정, 그리고 이산해와 율곡까지, 한벽루 하나가 조선 최고의 지성들을 한 공간에 품고 있었다.
이 감동이 더욱 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충남 노성의 종학당(宗學堂). 그 강학 공간 정수루 누각에는 향원익청(香遠益淸) 현판이 걸려 있고, 강당 내부에는 7대 선조 반호 윤광안(盤湖 尹光顔) 선생께서 문중 학당을 위해 서적과 쌀, 목재 등을 기증하여 종학당 중건에 크게 기여하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盤湖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돌은 고향집 강변에 반호정사(盤湖精舍)와 더불어 반호석(盤湖石)으로 남겨져 있다.
선현들이 누각에 남긴 현판 하나, 돌에 새긴 글자 두 자. 그것이 수백 년을 건너 오늘 이 자리에서 후손의 가슴을 울린다. 한벽루 위에서 퇴계 선생의 시판을 올려다보며, 나는 노성 종학당 정수루의 반호 선조를 동시에 떠올렸다. 누각은 그렇게, 시간을 초월한 만남의 공간이었다.
세 분의 시판 중 퇴계 귀향길 재현단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선생의 시를 조용히 암송했다.
숙청풍한벽루(宿淸風寒碧樓)
半生垣廓枉奔馳 반생원곽왕분치
반평생 속세를 헛되이 달려왔는데
薄暮客程催久醒 박모객정최구성
저물녘 나그네 길에 오래 잠 깨어 있네
一枕淸宵對仙館 일침청소대선관
맑은 밤 베개 베고 신선의 관사를 마주하니
重遊勝地如雲屏 중유승지여운병
다시 찾은 승경이 구름 병풍 같구나
欲和佳篇類點鶯 욕화가편류점앵
좋은 시에 화답하려 하나 꾀꼬리 같고
杜宇聲聲何所許 두우성성하소허
두견새 소리소리 어디서 허락하는가
梨花如雪暗空庭 이화여설암공정
배꽃은 눈처럼 어두운 빈 뜰에 가득하네
충주호의 푸른 물빛이 누각 아래로 출렁였다. 碧(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