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10일차 2편, 단양팔경(丹陽八景) 퇴계 선생이 그린 풍경
청풍 나루터로 향해 버스가 출발한다.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삼 주간 이상 파란색이었던 주가가 일주일 휴전 뉴스로 붉은색 차트로 돌아왔다. 그 차트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평온심이 되었는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버스 안 마이크에서 강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두방도 아닌 한방, 움직이는 역사학자 이한방 박사님이셨다. 오늘의 일정에 단양팔경이 들어있으니 먼저 팔경의 의미부터, 어제처럼 버스 안 특강이 시작되었다.
팔경(八景)이라는 개념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 후난성, 장강 남쪽에 동정호(洞庭湖)라는 큰 호수가 있다. 그 호수로 흘러드는 소강(瀟江)과 상강(湘江) 일대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를 묶어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팔경 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팔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이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며 지은 『관동별곡』에 그 여덟 경치가 펼쳐진다. 평해의 월송정, 울진의 망양정, 삼척의 죽서루, 강릉의 경포대, 양양의 낙산사, 간성의 청간정, 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절경들이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다. 상류에서 내려오며 보면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의 네 경치가 있고,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더해져 여덟이 된다. 사인암은 고려 말 학자 역동 우탁(易東 禹倬)이 사인(舍人) 벼슬을 할 때 즐겨 찾던 절벽에서 이름을 얻었다.
여기에 퇴계 선생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선생께서 1548년 단양 군수로 부임하셨을 때, 옥순봉과 구담봉은 청풍 땅에 속해 있었다. 선생께서는 청풍 군수와 담판하여 이 두 봉우리를 단양 땅으로 편입시키셨다. 그렇게 단양팔경이 완성되었다.
그후 퇴계보다 7살 연하인 이산해(李山海)의 아버지요,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의 형인 성암 이지번도 청풍 군수를 역임한 바, 이들은 한산 이씨의 집안이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가장 빛나는 이름이다. 목은의 7대손이 아계 이산해요, 목은의 현손 중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가 있다. 한 집안에서 훈구파와 사육신이 갈려 나온 것이다.
이한방 박사의 강의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강의 역사로 흘러들었다.
한강은 두 줄기로 나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다. 댐은 주로 북한강에 몰려 있다. 산악 지형이라 수몰 면적이 적어 댐 건설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북한강 최상류에는 파로호(破虜湖)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호수다.
1918년 착공하여 1944년 준공, 무려 26년이 걸렸다. 호수 이름 파로호는 이승만 대통령이 붙였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중공군을 대파했다 하여 '오랑캐를 깬 호수'라는 뜻이다. 요즘 중국에서 이름을 바꾸라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대로다.
화천댐에서 내려오면 춘천댐이 나온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만든 첫 번째 댐이다.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만큼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춘천댐 아래로 의암댐, 청평댐이 차례로 이어지고, 춘천에서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난다.
소양강은 인제, 원통 방면에서 흘러내려온다. 소양강댐은 우리나라에서 건설비가 가장 적게 든 댐으로 꼽힌다. 암반이 넓고 강폭이 좁아 자연 조건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이 북한강 물줄기는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비로소 한강이 된다. 우리가 걷는 이 길, 남한강에는 댐이 단 하나뿐이다. 충주댐이다. 1978년 착공하여 1986년 준공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의 마지막 대형 댐이었다. 충주댐 이후로는 대규모 댐 건설이 사실상 멈추었다. 동강댐 계획이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그 이후로는 양수발전소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물을 막는 일은 삶을 바꾸는 일이다. 청풍호 수몰민의 아픔을 어제 한벽루에서 느꼈고, 오늘 버스 안 강의에서 다시 만났다.
한강의 댐 이야기는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역시 지리학을 전공하신 박사님의 강의라 더욱 흥미로웠다.
팔경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고향집이 떠올랐다. 겸재 정선 선생이 1750년경 현 반호정사 삼의당 배경지인 반주정사를 다녀가시면 남긴 임천고암(林川鼓巖) 배경지, 나의 7대 선조 반호 윤광안(盤湖 尹光顔) 선생께서도 반호8경(盤湖八景)을 시문으로 남기셨다. 이한방 박사님의 특강속의 소상팔경에서 관동팔경으로, 단양팔경에서 반호팔경으로 이어지는 이 팔경 문화가 어느새 나의 뿌리와도 닿아 있었다.
2026.4.8. 단양팔경 버스 내 특강을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