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10일차 3편, 읍치(邑治), 고을을

by 윤석구

퇴계 선생 귀향길 10일차 3편, 읍치(邑治), 고을을 다스리는 법


이한방 교수의 버스 안 강의는 계속되었다.


한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엄청난 지식 저장의 두방째는 조선의 지방 행정, 고을의 크기에 따라 품계가 다름부터 이어졌다.


목(牧)과 대도호부(大都護府)는 정3품, 도호부는 종3품, 군수는 종4품, 현령은 종5품, 현감은 종6품이었다. 인구와 규모에 따라 수령의 품계가 달라졌으니, 오늘날 광역시장과 군수의 급이 다른 것과 다르지 않다.


단양향교
향교로 등교하는 유생듵


읍치(邑治), 고을의 중심 구조는 서울을 모델로 삼았다. 경복궁이 있듯 고을 중심에는 관아가 있고, 동쪽에는 향교, 서쪽에는 사직단(社稷壇)이 자리했다. 남쪽에는 성황단(城隍壇), 북쪽에는 여단(厲壇)이 있었다. 성황단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공간이요, 여단은 주인 없는 귀신, 억울하게 죽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주던 곳이다. 오늘날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것을 생각하면, 옛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넓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읍치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향교는 전국 거의 모든 고을에 남아 있고, 사직단은 지명으로만 전해지는 곳이 많지만 일부는 복원되었다. 경북 대구 노변동에는 사직단이 복원되어 있고, 군위에도 사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읍성(邑城)은 큰 고을이나 교통 요지, 바닷가에 주로 축조되었다. 낙안읍성, 해미읍성이 잘 보존된 사례로 꼽힌다. 대구는 시군 통합 과정에서 근대화가 비교적 늦어진 덕분에 읍의 형태가 도시 중 가장 잘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은 사대문 안 소문(小門)들이 복원되어 있고, 수원 화성은 읍성 복원의 가장 빛나는 사례다.


버스 창밖으로 봄이 펼쳐졌다. 벚꽃 가지 사이로 청풍호의 푸른 물빛이 일렁였다. 어제 방문했던 한벽루가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느껴지며,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속을 채우던 목·군·현의 품계와 읍치의 구조가 — 저 물빛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수몰된 마을들 위로 봄은 어김없이 왔다.


청풍관아 도호부절제어문


어제 지나쳤던 청풍관아 한벽루 입구 — 도호부절제어문(都護府節制御門).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읍치 강의를 들으니 비로소 그 이름의 무게가 느껴졌다. 도호부의 군사적 권위와 기강을 상징하는 문 — 강의에서 배운 것이 어제의 풍경으로 살아났다.


역시 공부는 끝이 없다. 이한방(李翰邦) 박사님 — 翰(편지 한) 邦(나라 방), 그 존함처럼 역사와 지리와 세계사를 넘나드는 강의의 끝이 없으셨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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