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덮인 산야는 고요하고, 맑은 강바람은 솔밭을 스치네."
을사년 설날, 순백의 눈이 내린 고향에서 맞이하는 겨울 풍경화. 눈꽃이 휘날리는 이 설국의 아침, 강경역에서 시작하여 백마강 변을 따라 반호정사와 삼의당까지 이어지는 10여 km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강 건너편에 우뚝 선 옥녀봉은 그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계룡산(鷄龍山)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냅니다. 지난밤 20cm나 쌓인 눈 속에서 갈대와 버드나무는 하얀 솜옷을 입어 무거워 보이지만, 새해 첫 아침 고향 땅을 밟는 발걸음만은 눈길처럼 가볍고 청아합니다.
순백으로 덮인 숲길을 따라 7대조 반호(盤湖) 할아버지의 산소부터 부모님의 산소까지, 추석에 받아 고이 보관해 둔 그님의 하사주(下賜酒)를 정성스레 올리며 큰절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차례로 찾아뵙는 성묘길, 마음은 더욱 경건해집니다.
반호정(盤湖亭)에 올라 노성 종학당을 바라보며, 선조님들께서도 그님의 옥체강건을 기원하는 마음을 주십사 'silent prayer'를 올립니다.
푸근한 정이 흐르는 고향 집. 은행나무 두 그루 아래 자리 잡은 반호석(盤湖石)에서는 할아버지의 기운이 용솟음치듯 눈이 녹아내립니다. 새하얀 눈을 정성스레 모아 반호 글자에 덧입히니, 더욱 웅장하고 깊이 있는 '盤湖'가 되어 할아버지의 숨결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수를 물려주신 선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가족들 모두 평안하심을 기도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귀경열차에 오릅니다.
2025.1.29 설날 반호정사 삼의당에서 from sk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