妻和萬事成
[새해 설을 지나며 신년운세 점치는 마음]
<좌충우돌인생2막 31호.2025.2.6>
설날 아침,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강경 백마강 변 뚝방길을 걸었다. 10km를 걸어 고향집 盤湖精舍 대문을 열며 마주한 풍경은 겸재 정선의 수묵화 한 폭이었다. 강 건너 옥녀봉과 계룡산의 설경,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과 가음산의 반호정이 어우러진 그림 속에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조들의 숨결이 서린 이 땅에 올해만큼은 정치적 안정의 국리민복 태평성대만 깃들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거웠다. 세월의 무게일까, 아니면 백수라는 현실 때문일까.
불안한 마음에 인사동 조계사 인근의 유명 도사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고령이 되셨단다. 수제자가 대신 신년운수를 봐준다고 했지만, 망설여졌다. 평생 단 두 번의 도사를 찾았던 내가 이번만큼은 믿음직한 길잡이가 절실했다.
과거 임원 승진을 앞두고 만났던 도사의 말이 떠올랐다. "돈 만지는 일 했어? 벌써 갈 수도 있었는데 참으로 정직하게 살았구먼, 그 덕에 여기까지 왔어. 이 문구 읽어봐, 다 쓰여 있잖아, 초년 복은 없었지만, 진심의 태도에 임원은 될 거야. 다만 정성을 정말 많이 쏟아야 해!" 지나고 보니 그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계열사 임원이 되긴 했지만, 그토록 꿈꾸던 본사 임원은 아니었고,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시간도 제한적이었다.
두 번째 찾았을 때 도사는 또 이랬다. "처복이 있어, 62세 전에 인생의 봄이 올 거야. 그때를 놓치면 겨울로 가는 거여, 알아서 잘혀." 지금도 그 수수께끼 같은 '처복'이란 말이 안개처럼 아리송하다. 그 타임안에 아웃당할 가능성 있다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백수가 되는 시기가 되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질 것이니 잘 모시라는 조언인지 두리뭉실한 도사 말씀에 뒷 꼭지만 가려웠다.
설도 지나며 새해가 밝았다. SNS 상에는 '신년운수 사주풀이 꿈풀이 신통방통' 용어들이 난무한 가운데 네이버 신년 운세도 찾아보았다. 화려한 수사와 낙관적 전망은 가득했지만, 정작 내가 간절히 바라는 '돈벼락'이나 '춘삼월 전 백수탈출 취직'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점신' 앱에는 하루 150만 명이나 방문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운세를 찾는다는 건,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30대들의 취업 불안, 또는 솔로들의 위안처일까.
내 음양오행 해석은 여전히 화려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열정, 굵고 곧은 나무 같은 끈기, 정직하고 우직한 태도... 오늘의 운세는 특히 말조심과 배려를 당부했다. 마치 사회 초년병 시절, 술자리 다음 날 책상 위에 조용히 놓여있던 멘토 삼성 K선배님의 "삼성일행(三省一行)" 쪽지 같았다.
재물운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말라"라고 했고, 학업운은 "도전하고 연구하라"며, 건강운은 "술을 삼가라"라고 조언했다.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듯한 이 모호한 해석들!
설을 지나며 그래도 도사께 한번 더 신년 운수풀이에 의지하고 싶던 차 마침 H 스승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올해는 꼭 좋은 일 생기길 기원해요"라는 덕담에 근황을 털어놓자, 울산에 기막히게 잘 맞추는 도사가 있다며 추천하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바로 연락을 취하니 그 도사는 "우문현답(友問現答), 우리의 문제는 현장이 답"이라며 전국 어디든 찾아간단다. 주말엔 서울에서도 가능하단다. 하지만 찾아가는 서비스이기에 복채가 20만 원이란다. 백수가 그런 돈을 써도 될까? 妻福이 있다는 배우자가 알면 기절초풍할 텐데, 설령 점괘가 괜찮다면 모를까 신통찮다면 괜히 복채만 날리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속에 사람들은 왜 점을 볼까? 특히 해가 바뀌면서 신수풀이 검색이 증가하고 도사를 더 찾는 심리는 뭘까? 붓펜을 굴리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점이란 건 단순한 미래 예측을 넘어선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찾고, 새로운 용기를 얻으려는 현대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고민에 빠진다. 20만 원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미련을 풀려고 또다시 인터넷 점이나 볼까? 한 번 더 찾아보다가 웃음이 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요즘은 "처화만사성(妻和萬妻成)"이라 한다지. 인사동 도사 말씀처럼 진짜 妻의 기도로 福이 다시 올지... 이렇게 또 한 해가 시작된다.
그리고 마음다짐한다. 점이니 도사니 모두 만사 제쳐 놓고 오늘의 학습운처럼 더 도전하고 더 읽고 더 연구함에 더 몰입하자고!
2025.2.5. 2시 5분 from sk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