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열정으로 광명을 비추다*
봄의 문턱에서 12년 전 2013년도 상반기 W은행 불광동지점장으로 부임하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주로 자금과 증권업무를 전공하며 여의도 금융시장의 중심지점을 꿈꿨던 나에게, 서울시 재정자립도 꼴찌를 달리던 은평구 불광동지점 발령은 쓸쓸한 커피 한 잔의 쓴맛처럼 남았다. 지금은 미디어센터 중심지로 화려하게 변모했지만, 당시는 개발 초기의 관내 상암동지점장을 역임했던 내게 불광지역을 너무나 잘 알았던 고단한 영업환경이었었다. 하지만 한번 난 발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경이 어렵다던 말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기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첫날, 지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웬걸, 객장 안은 70-80대 고객님들로 북적였고 특히나 그것도 80%가 정겨운 할머니, 할아버님들의 미소로 가득했었다.
다음날, 마치 장군이 전장을 살피듯 세밀한 지형정찰을 나섰다. 보건사회연구원, 환경기술원, 여성평등연구원 등 인문사회연구원 산하 정부기관들이 즐비하고, 진관사, 삼천사, 국령사 등 사찰과 북한산 진입로의 문화공간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게 웬일인가! '佛光寺'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두 곳이나 있었다.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만 같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고, 부임 세 번째 날, 두 곳의 불광사 대웅전에 합장을 올리고 지점의 영업 캐치프레이즈를 정했다.
"불(佛) 내고 광(光) 내자!"
이 캐치프레이즈를 가슴에 새기고, 고객님을 정성껏 섬기며, 직원들과 함께 연수도 하고 마케팅 방향도 제시했다. 고객님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기업체 한 곳 한 곳 재무제표를 분석하며 금융지원 방안을 도출하는 나날의 정성과 혼을 다한결과 부처님도 감읍하셨는지 기적이 일어났다!
6개월 상반기 마감을 단 일주일 앞두고, 지난 5년간 19위, 20위를 맴돌던 만년 꼴찌 점포가 단숨에 1위로 도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토록 믿었던 K차장이 부임 전 근무지점에서 배우자 명의로 주택 감정가를 위조해 과다대출을 받아 선물투자를 했고, 현 지점에서는 창구에서 상담한 주택구입자금대출을 대출모집인이 중계한 것으로 조작하여 유치수수료를 받아 착복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특별히 지점장과 차장으로 함께 부임하던 날, 붉은 넥타이를 선물로 매어주며 "부디 나쁜 인연이 아닌 좋은 인연으로 되거라"며 첫 얼굴을 보고 무심코 던졌던 말이 씨가 되었는지, 상반기 성과 마무리를 코앞에 두고 본부 감사부 특별감사에 적발된 것이었다.
오호통재라!
통상 상하반기 업무 마감 후 성과평가에서 전국 지점장 1,500명이 킨텍스 무대에서 1등 패 수상을 받는 자리. 그토록 부풀었던 1등 수상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당사자는 직장면직, 중간실무자는 견책을 받았으며, 지점장은 직원관리 소홀로 '주의' 징계를 받았던 12년 전의 가슴 아픈 불광동 지점장 스토리다.
'불(佛) 내고 광(光) 내자!'는 캐치프레이즈에 부처님 '佛'자를 써서 정성껏 '불공'을 드려도 부족할 터인데 '불을 내자'라고 이해하신 결과 부처님의 노여움을 샀던 것일까...
지점장으로서 1등 달성 수상패와 두툼한 시상금은 커녕, 직원관리 소홀로 주의받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그 순간들... 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상반기의 아픔을 폭탄주로 달래며, 다시 두 주먹 불끈 쥐고 달리고 또 달렸다. 들이대의 정신으로 들이대고 또 들이댔다. 두 번 다시 부정은 철저하게 예방한 결과 그해 하반기에는 4위, 그리고 다음해 상반기에는 당당히 1위를 달성했다. 직원들과 한 약속대로 제주도 올레길로, 성산포로 멍게 반 토막 잘라 껍데기에 올레소주 가득 담아 지난 상반기의 아픔을 축배 두 배로 힐링 여행을 다녀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나쁜 행동을 사전에 체크하지 못하고 예방하지 못했던 관리자로서의 자세는 아직도 가슴 한쪽에 멍이 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흘러 2025년 3.1절 오전, 또다시 불광동 둘레길이 부른다.
당초 다음주 3월 8일 서울대 ACPMP 청계산 등산 일정과 겹쳐 고민하다가, 평소 존경하는 그 이름도 거룩한 덕을 연마하자는 '덕연(德硏) 인문트레킹' 한영섭 원장님의 정성과 사랑이 깃든 불광 둘레길 동행을 선택한 바, 참가비를 보내고 톡방을 확인해 보니, 3월 8일이 아닌 3.1절 등정 안내문이 따뜻하게 반겨준다.
아아, 이 모두가 부처님의 慈悲로움이 아닐까!
이 참가의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휴일 아침에 12년 전 생각이 불끈 솟아, '불(佛) 내고 광(光) 내자' 佛光의 斷想 한 토막을 참가의 기쁨으로 나누었던 연초, 어느덧 두툼한 오리털을 벗고, 106주년을 맞이하는 3.1절 아침, 모임장소 불광 전철역 2번 출구 인근 호텔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불광사 진입로로 향한다.
마음과 몸은 며칠 전부터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향했지만, 당초 참여 약속한 불광 둘레길을 걸으며 12년 만에 찾은 佛光寺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아 삼배드리고, 오후에 광화문에 합류함을 정하고 목적지 방향으로 향한다.
진행 사무총장님 사전 안내처럼 두 시간의 둘레길로, 아침에 합류하신 분의 말씀처럼 "트레킹, 별거 아님"을 느끼며, 30여 년 직장생활에서 가정으로 전직하신 분의 "이제 늦잠이 더 고마움"을 느낀다는 소감도 들으며, 봉지봉지에 싸 오신 오이 대신 달콤한 무 맛을 느끼고, 백 작가님의 멋진 사진 인증샷을 날리며 하산길로 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광의 단상' 속편을 톡방에서 살짝 언급한 트레킹 여정의 속편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그렇게 부정직한 직원의 나쁜 행위로 1등 수상이 날아가고 거액의 시상금도 날아갔지만, 포용적 리더십,코칭리더십, 변혁적 리더십, 진성 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 중 하나인 '섬김 리더십'의 마음이 가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성과를 일구고 달성했기에, 지점장은 주의 경고로 문책을 받았지만, 직원들의 그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 즉 모든 것은 극에 달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라고 했던가! 머리를 싸매고 궁리에 궁리를 더한 결론, "그래, 은행장이 시상하는 1등 시상패 모형과 동일하게 지점장이 직원들에게 드리는 지점장 명의 감사패를 만들어 시상하고 격려하자.
[감 사 패]
KPI 통합그룹 1등 불광동지점
"불같은 열정으로 광명의 명품 S 1등 지점 달성"을 목표로 전 직원의 투철한 사명감과 혼신의 노력 결과 2013년 상반기 통합그룹 28개 지점 중 1등을 시현하였기에 우리 불광동지점 전 직원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2013.7.28. 지점장 ○○○ 드림
세월은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불타도록 열정을 다 바쳤던 지난날의 직장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좋은 선후배들과 신명을 다해 일했던 그 순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덕연(德硏) 멤버들과 멋지게 신축한 W은행 불광동지점 건물을 둘레길 중턱에서 멀리 내려다보며 그날의 열정을 되돌아본다. 오늘 북한산 불광동 둘레길 트레킹을 만들어 주신, 그 이름도 거룩한 큰 덕을 쌓으시고 앞으로 지속적 연마를 주도하시는 덕연 선생님의 넓고 깊은 지도 아래, 3.1절 숭고한 그 정신을 새기며 땀을 흘린 불광 둘레길 트레킹 시간.
다음 달은 과천 공원 들레길.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짐을 느끼며, 마음이 콩밭인 광화문으로 GTX를 타고 직행한다.
2025.3.1. 불광동 둘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