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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현장이 답이다 - 간월암에서 만난 지혜의 순

by 윤석구

[우문현답! 현장이 답이다 - 간월암에서 만난 지혜의 순간들] <좌충우돌 인생2막. 51호, 2025.6.26>

밤새 내린 빗방울이 멈추며 먹구름 너머 밝아지는 용산역 광장 앞, 특임교수 역할로 함께하는 우리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부동산금융자산학과 학생들과 서산 일명 충청도 말로 스산 지역의 특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간월암(看月庵)이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신비로운 섬 사찰 관람부터 경매 낙찰 물건 현장탐방까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단순한 견학을 넘어선 삶의 깊은 지혜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간월암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 이곳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朝鮮) 건국에 지대한 역할을 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곳은, 그 이름 자체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무학대사의 탄생 설화는 다양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교훈이다.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사는 여인이 출산을 앞두고 시장에 어리굴젓을 팔러 나가던 길에 숲에서 아이를 낳았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갈 수 없어 수풀로 덮어두고 장에 다녀왔더니, 학(鶴) 한 마리가 아이를 보호하고 있어 '무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과, 학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춤추고 있었다 하여 '무학(舞鶴)'이라 이름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후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 '무학(無學)'이 되었다는 대사의 여정은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또한 대사가 버선발로 바다 위를 거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질만큼, 간월암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특히 간월암 사찰 앞마당 설명문의 무학대사 지팡이 사철나무 이야기는 간월암의 영험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1300년 전 원효대사가 창건하시고 조선 초 무학국사께서 중창 후 간월암이라 암자 이름을 명명한 후 대사가 간월암을 떠나면서 "이 나뭇가지가 다시 살아나면 불교가 다시 흥하리라"라고 예언하며 손수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는데, 1930년대에 이르러 그 고목나무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 잎이 피어났다고 한다. 이를 직접 확인한 만공 선사가 "범소유상(凡所有相)이니 불면윤회(不免輪廻)로다. 즉 일체 모양이 있는 것은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라고 하시고 충창을 결의 1941년 간월암 중창 완공했다. 또한 1942년부터 3년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올린 후 사흘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는 인근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역할과 더불어 단순한 전설을 넘어선 역사적 감동을 준다. 그러한 유서 깊은 사철나무의 새순 끝잎의 영롱한 빗방울에 반사된 법당 안의 부처님이 연신 핸드폰 카메라 눈에 들어온다.



본격적인 현장학습 목적의 답사 시간, '우리의 문제는 현장이 답이다' 우문현답(愚問現答)이 아닌 오늘 간월암 일대 탐방의 핵심 우문현답(友問賢答)은 부동산자산금융학도들이 두 곳의 부동산 경매물건 입찰 성공 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수만 평의 대지와 창고로 이루어진 송악 부동산 경매 물건지였다. 정주영 회장님의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서산 이 지역 이 땅은 경매 당시 토지와 건물 소유주가 달라 경매 입찰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낙찰 김 사장님의 매의 눈과 김현회 풍수지리 교수님의 주도면밀한 분석 서퍼트로 오히려 그 점이 남들이 피하는 '리스크 대비 높은 수익'을 안겨준 성공 사례였다. 전직 은행원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복잡하고 위험해 보이는 물건, 예를 들어 미등기 건물처럼 법적 문제가 얽힌 물건에서 오히려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물건들을 낮은 가격에 낙찰받고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방문지인 창성기계의 드넓은 대지와 내부 기둥이 없는 견고한 H빔 구조의 공장에서는 더욱 값진 교훈을 얻었다. 역시 좋은 물건을 낙찰받은 소유주 창성기계 민 회장님으로부터 들은 부동산 투자 철학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선 통찰이었다. 낙찰 물건지의 지리적 접근성, 즉 고속도로 IC와 가까운 곳인지, 종업원 확보는 용이한지, 낙찰물건을 응용하여 태양광 설치 등 추가 수익이 가능한지 등과 함께 '토지의 장기적인 가치 상승 잠재력'에 주목하라는 조언이었다.

현장 두 곳을 모두 관찰 학습하면서 전문가의 의견과 교수님의 추가 설명 종합의견은 다음과 결론에 도달했다. 부동산 투자에서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정보의 중요성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시장 동향, 정부 정책, 개발 계획 등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 곧 성공의 열쇠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분명 땅값 즉 부동산 가치가 오르는 것을 직접 경험한 두 분 낙찰자의 성공 이야기였다. 부동산에 대한 현장 확인 노력과 투자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것이 경매물건 낙찰 성공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노력의 경험에 풍수를 고려한다면 금상첨화, 120% 성공 지름길임을 당연히 풍수지리 교수임의 후담이었다.

탐방 중간에 방문한 해미읍성은 또 다른 의미의 교훈을 안겨주었다. 1790~1880년 사이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나무 동쪽으로 뻗어있는 가지에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했던 말없는 천주교 박해 현장의 감옥 앞에 서 있는 회화나무 아래서 순교한 분들의 넋을 깊이 위로하며, 우리는 역사의 무게와 신앙의 힘을 되새겼다. 그러한 해미읍성 병마절도사 동헌 및 감옥자리가 이제는 얼마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방문한 국제 성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의 흐름이 가져오는 변화와 화해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어느덧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었다. 저 멀리 서해대교를 분주히 오가는 차량들이 보이는 멋진 한진포구 해안가에서 갈매기 수십 마리가 새우깡 먹이를 주는 길손의 손바닥 위를 빙글빙글 돌며 재빠르게 낚아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갈매기는 먹이 사냥의 성공을, 길손은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는 가운데, 좋은 물건 진단으로 수십억 부를 창출해 준 풍수학 김 교수님에 진심 어린 서퍼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창성기업 민 회장님이 대접해 주신 해안가의 싱싱한 회를 맛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땀 흘려 배운 후 맛보는 음식은 더욱 꿀맛 같았다.

스산 일대 현장답사 하루를 보내며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듯, 이번 간월암 일대 현장 탐방은 단순한 견학을 넘어선 살아있는 현장 교육 그 자체였다. 무학대사와 만공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 기운을 향유하며 걸으면서 느낀 영적 깨달음, 성공한 부동산 경매 투자 사례를 통해 얻은 실무 지식, 그리고 해미읍성에서 되새긴 역사의식까지, 모든 것이 값진 경험의 시간이었다.

최현일 학과장님 및 배동학 교수님의 따뜻한 지도 아래 함께 참여한 서른 명 남짓한 만학도 우리 학생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함박웃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말고사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 현장탐방 여정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다.

간월암의 상징 사철나무처럼 늘 푸르고, 우리 학생들이 이번 현장 탐방에서 얻은 지혜와 용기를 바탕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하게 성장하며 아름다운 꽃을 더욱 예쁘게 피우기를 진심으로 전하는 마음이다.. 또한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이 답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문현답(愚問賢答)이요, 우문현답(友問賢答)인 자세이며, 오늘 현장견학 탐방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이지 않을까....

2025년 6월 21일,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부동산금융자산학과, 간월암 및 경매 낙찰 우수 물건지 방문하고... 특임교수 윤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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