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월길 앞 한옥마을 그리고 점심봉사에서
[진관사에서 삼천사까지, 따뜻한 나눔의 기억]
마음은 온통 대부도 김광호 회장님의 미래학당 1박 2일 공부방에 가 있었다. 회장님께 절반만 참석하겠다고 톡을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결국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깨끗이 단념했다. 먼저 약속하고 회비까지 낸 터라 德硏가족 진관사 삼천사 인문 트레킹을 택했다.
서울 사대문 성곽을 품은 아기자기한 동네 뒷산들이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늘 가까이 있던 남한산성, 관악산, 아차산, 안산, 북악산, 북한산성 그리고 남산이 이제 서울의 자랑이 되었다니, 관광 수지에 더없이 좋은 보약이 아닐 수 없다.
무더운 7월 초순이었지만 마침 구름이 따스한 햇볕을 가려주고 녹음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트레킹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덕연인문 식구들과 함께 진관사·삼천사 트레킹 길을 걷는 동안 12년 전 우리은행 불광동지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연신내역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정성스레 준비해 온 파프리카를 맛봤다.
"빨간색과 노란색, 어떤 색 파프리카 드실래요?"
"빨간색이요. 저도 빨간색이요!"
모두들 빨간색을 선호했는데, 그 모습 속에서 묘한 웃음과 함께 달콤한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고등학교 앞 한옥마을행 버스에 올랐다.
10여 분을 달려 진관사 입구, 하나고등학교 맞은편 한옥마을을 보는 순간 일행들에게 나도 모르게 옛 무용담이 술술 풀려나왔다.
"아, 이 한옥마을 말이죠. 12년 전에 제가 여기 불광동지점장으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이에요..."
작가 신광철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옥은 "한국인의 정신과 철학, 그리고 정체성이 담긴 그릇"이다. 그때 온돌과 마루를 품는 한국인의 넉넉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 금융업의 본질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몇 분이 한옥마을 토지 분양 대출이 가능한지 물어왔어요. 그때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옥마을 100여 채, 토지값만 가구당 6억 원에 건축비까지 하면 30평 2층 기준으로 12억 원이 넘는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요." 트레킹 길을 걸으며 일행들에게 들려준 그 시절의 이야기는 생생한 감동을 선사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SH공사의 토지분양증명서가 보증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감도 사진을 들고 직접 SH공사를 찾아가 담당 직원분과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은행 심사 부서 분들과도 꼼꼼히 상의해서 결국 분양권 토지매입자금 집단대출 90%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어요." 그때의 보람이 오늘 이 길을 걸으니 다시금 밀려왔다. 후임자가 건축비 대출까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고 나니 정말 큰 성취감을 느꼈다. 한 건의 대출이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신용카드, 급여이체, 청약저축까지 이어지는 '1타 5피'의 놀라운 효과를 거둔 것이었다. 결국 그 결과 병풍 같은 북한산을 배경으로 멋진 한옥이 들어섬에 일조했고
외국인들은 일부러 북한산 한옥마을을 선호 투숙한다고 한다.
신나는 무용담을 이어가던 중 진관사의 깊은 유래도 함께 나누었다. 1011년 고려 현종이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진관사. 특히 2009년 칠성각에서 발견된 태극기와 독립운동 자료들을 보니 이곳이 단순히 오래된 사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성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진관사 대웅전에서 경건히 삼배를 올리고 사찰 내 찻집으로 향하던 길에 정말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이배용 장관님과 손병두 회장님 일행이셨는데, 한영섭 원장님 인문학 모임에서 여러 번 뵙고 늘 좋은 말씀을 들었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주지 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은 오래도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진관사에서 나와 발걸음을 옮겨 오리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몸과 마음에 보약이 되는 듯한 오리백숙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삼천사로 향하는 길에서도 12년 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삼천사는 원효대사가 세운 천년 고찰로, 한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할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이곳 삼천사에서는 인덕원을 세워 지역 봉사활동을 도맡았다.
"그중 한 곳이 은평 복지관이었는데, 직원들과 월 1회 점심 배식 봉사를 했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께 따뜻한 밥 한 그릇씩 드리는 일이었는데, 낡은 식판과 수저, 오래된 보온기기들이 자꾸 눈에 밟혔어요." 일행들이 귀 기울여 듣자 이야기는 더욱 생생해졌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니 어르신들께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본부 사회봉사부에 정성껏 건의드렸더니 고맙게도 2000만 원 예산을 배정해 주셨어요."
한 달여 후 복지관장께서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반짝이는 젓가락과 수저, 식판과 컵, 그리고 건조기까지. 깨끗한 그릇으로 맛있게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일선 지점장으로서 나의 작은 건의와 승인, 그리고 나눔과 봉사가 이렇게 큰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인덕원의 상위 사찰인 삼천사 주지 스님께서 꼭 차 한잔 나누자고 시간주심에 처음 찾았던 그때를 다시 기억하며 법당의 부처님께 두 손 모아 합장의 예를 크게 올렸다.
오늘 트레킹을 통해 12년 전 우리은행 불광동지점장으로 근무하며 깨달았던 금융인의 마음가짐을 일행들과 함께 나누었다. 첫째, 현장을 품는 마음이다. 고객의 진정한 마음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는 결코 알 수 없다. 한옥마을 대출 건도 직접 SH공사를 찾아가 담당자와 진심으로 소통한 덕분에 비로소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둘째,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마음이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될 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토지분양증명서를 보증서로 활용하여 나중에 정식 근저당권으로 이어가는 절차도 바로 그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사회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금융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 가지 마음가짐이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고객을 향한 진정한 마음으로 더욱 멋진 영업맨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 은행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2년 전 내가 고민했던 것처럼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도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하여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영업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신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음으로 듣고, 그에 맞는 최고의 해법을 정성껏 찾아드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창의적인 생각과 정성스러운 마음, 그리고 따뜻한 배려가 늘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천년 고찰 진관사에서 만난 태극기의 정신처럼, 우리도 나라와 지역사회가 더욱 따뜻해지도록 기여하는 금융인이 되어야 한다. 작은 관심과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 아닐까.
무더운 여름 트레킹을 마치고 먼저 떠남에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북한산 자락에서 만난 소중한 시간들과 12년 전 추억들이 일행들에게도 좋은 영감과 힘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삼천사 계곡으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는 일행분들의 한여름 모든 열기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 평화로운 물소리 속에서 초여름날의 존경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도 익어가는 것 같다.
2025.7.5. 백초월길 진관사와 삼천사 부처님을 찾는 길에 그때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