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 월대에 올라 근정(勤政)의 의미를 새기며... (1편) <좌충우돌 인생2막 53편, 2025.7.10>
초록이 짙어가는 지난 6월 셋째 주 월요일 오후, ACPMP 글쓰기 공부방 원우들과 함께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단순한 고궁 탐방이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굳건히 자리한 궁궐을 걸으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님 말씀처럼 시멘트 건물 숲 속에서 숨 쉬는 문화유산의 소중함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서울을 '궁궐문화도시'라 해도 손색이 없는 평소 의견처럼 이 아름다운 궁궐들이 없었다면 우리 도시는 얼마나 메마른 곳이 되었을까요. 북악산과 인왕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경복궁, 산세의 자연미를 온몸으로 품어 안은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고려 수도 개성에 송악산 아래 자남산이 있다면 조선의 한성 북한산 아래 남산이 있듯, 오늘날 우리가 이 찬란한 유산과 함께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1392년, 태조 이성계의 꿈이 이 땅에 뿌리내렸습니다. 개성에서 새로운 수도를 찾기 위해 풍수지리 전문가들과 무학대사가 계룡산 등 산천을 헤매며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경복궁 터였습니다. "안팎 산하의 형세가 빼어나고 사방의 길이 고르며 배와 수레가 통하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후세에 영구토록 전승하여 천인의 뜻에 합하리라." 도평의사 문서에는 새로운 왕조의 간절한 염원이 절절히 배어 있었습니다.
1년 만인 1395년 9월, 경복궁이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왕자의 난'이라는 핏빛 소용돌이를 거쳐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의 궁에서 정치(政治)하는 것이 마음에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창덕궁을 새로 지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소중한 유산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세월은 때로 잔혹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273년간 경복궁은 폐허로 방치되었습니다. 빈 터에 바람만이 쓸쓸히 돌았을 그 긴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러나 필자의 블로그 필명이 대원군이듯 흥선 대원군은 왕권 수호의 간절한 염원으로 당백전까지 발행하며 복구에 나섰습니다. 고종 2년(1865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복원 공사는 186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흥선 대원군의 그 왕권수호 뚝심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이 아름다운 궁궐을 거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복궁 지도를 바탕으로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김학범 교수의 차분한 해설을 따라 법궁의 숨결을 느껴보았습니다. 삼문삼조(三門三朝)의 장엄한 체계 즉,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 근정문에 이르는 길에는 조선 왕조의 품격이 한 걸음 한 걸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외국 사신을 맞는 외조(外朝), 정무를 보는 치조(治朝),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로 이어지는 공간의 위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었습니다.
광화문(光化門)은 '만백성을 교화하는 큰 빛'에서 비롯되었고, '경복(景福)'은 『시경』 대아 기취편의 아름다운 시구, '이미 술에 취하고 배부르니 군자는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누리리'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에도 깊은 뜻이 서려 있다니, 참 아름답습니다.
조선 정치의 심장부, 근정전 앞에 서니 '근정(勤政)'이라는 두 글자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정도전이 『서경』을 인용하며 왕에게 전한 말,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다." 그리고 "아침에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해야 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이다."
이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청장님은 쉴 때는 편히 쉬는 것도 부지런함에 포함된다며 근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주었습니다.
저도 여기에 하나의 생각을 더해보고 싶습니다. '근정의 부지런함'에는 좌우로 갈라진 이 시대에 지도자가 더욱 정직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단순한 근면함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마음으로 정치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다소 어렵다고 해서 다음 세대인 20-30대에게 국가 빚을 떠넘기면서, 국민 한 사람당 25만 원씩 나눠주는 식의 포퓰리즘 정책도 지양해야 합니다. 이는 공명정대한 국고 관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참고로 1인당 25만원 환산시 국민보조금 13조원 가치 분석자료에 의하면,
▪︎국내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
▪︎현재 한국에 39대 밖에 없는 F35 스텔스 전투기를 100대 구입
▪︎4.5세대 최신 국산전투기 KF-21 약 150대 구입
▪︎전세계 자주포 시장 60% 점유 한국산 자주포 K9 약 2000문 구매
▪︎한국해군 7만톤급 重型 항공모함2척 건조
▪︎장보고 급 3600톤 최신 잠수함12척 이상 건조 등과 맞먹는다 합니다. 과연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남북 대치의 어느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수 없는 현실속 무엇이 중한지요!
또한 근정전의 용상에 앉는 지도자는 편파적인 군주가 아니어야 합니다. 두루두루 살펴서 온 백성이 편안하게 큰 복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근정전 앞마당 품계석에 서 있는 고위 관리들도 백성이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서 민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진정한 근정(勤政)이 아닐까요?
이런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백성이 진정 필요로 하는 오늘날의 지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근정'의 마음으로 정치한다면, 둘로 갈라진 광화문 앞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서로 다른 민의의 목소리들도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을 것입니다.
(2편 다음 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