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복궁 근정전 월대에 올라 근정(勤政)의 의미를 새기

by 윤석구

[경복궁 근정전 월대에 올라 근정(勤政)의 의미를 새기며... ](2편) <좌충우돌 인생2막 54호. 2025.7.17>

과학과 예술혼이 담겨 있는 경회루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김학범 해설사 교수가 들려주는 경회루의 과학적 기둥 구조와 내부 문의 정교함, 그리고 경회루로 인해 법궁으로서 경복궁의 지위가 더욱 확고해졌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정전과 교태전을 뒤로하고 아미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비만의 은밀한 정원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의 굴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 같았다. 경회루의 저수를 위해 판 흙으로 정원의 산을 만든 실용적 지혜, 강녕전과 교태전의 연기를 정원 위 담장으로 이끌어 올린 굴뚝의 섬세한 아름다움, '수복강녕' 같은 길상의 문구들이 새겨진 담장의 문양 글씨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붓글씨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의 경복궁 관람이 주로 근정전 중심의 피상적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해설과 함께 궁궐의 깊은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건청궁에 이르러서는 발걸음이 저절로 무거워졌다.

건청궁은 원래 1873년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실 신성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곳을 거처로 삼으면서 조선 근대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힌 곳도 바로 이곳이다.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려던 고종과 명성황후의 개혁 의지가 이 작은 공간에 온전히 집약되어 있었다.

하지만 1895년 10월 8일 새벽, 을미사변이라는 참혹한 비극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도한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이다. 예전에 관람했던 명성황후 뮤지컬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날 새벽의 참혹함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건청궁 마당에서 김 해설사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당시 고종이 느꼈을 절망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평소 두세 차례 방문하는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나조차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 건청궁에서만큼은 깊은 울분을 느꼈다. 한 나라의 국모를, 그것도 새벽에 무력으로 궁궐에 난입해 시해한다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야만적 행위였다.

'국력은 체력'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약한 나라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현장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건청궁을 나와 향원정에 도착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인 이곳에서 오리 네댓 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향원정은 창덕궁 부용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으로 꼽힌다. 노성 종학당 강당에 부착된 '향원익청(香遠益淸)' 편액처럼,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따온 것으로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는 뜻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복 받은 오리들이 더없이 행복한 날개를 펴며, 관람객들에게도 기쁨의 날개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관람 장소인 태원전에서 삶과 죽음, 시간의 공간을 만났다. 왕실 가족의 장례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태원전의 설명을 들으며, 삶과 죽음,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숙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혼(魂)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복(復)"을 외쳤다는 옛 의식 이야기는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염원이자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김 교수의 해설은 경복궁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역사를 넘어 우리 삶의 철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한글 창제의 산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지 못한 것이다.

세종대왕 시대 최고의 학문 연구 기관이었던 집현전, 경회루 남쪽에 자리했던 그곳에서 장영실, 정인지, 신숙주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완성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수정전이 서 있지만, 집현전의 정신이 이 궁궐 곳곳에 스며있지 않을까.

경회루 앞을 지나치면서도 그 남쪽에 있었던 집현전을 떠올렸다. 학자들이 밤새 등불을 켜고 연구에 몰두했던 그곳, 임금이 직접 찾아와 학문을 논했던 그 마당,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글자가 탄생한 그 순간의 감격을 떠올리니 감사함이 밀려왔다. 오늘 이렇게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들 덕분이다.

관람 마감 시간이 임박해 영추문으로 나서는 길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점령했던 자리가 삼문삼조로 다시 복원된 것을 보며 역사의 질곡과 복원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팀원들과 맥주 한잔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근정전에서 느낀 통치 철학의 무게, 건청궁에서 마주한 역사의 비극, 집현전에 대한 그리움까지 모든 것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오늘 경복궁에서 느낀 것들을 그냥 기억 속에만 묻어두기엔 아깝지 않은가오?" 글쓰기 모임답게 각자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행문을 써보자는 제안을 했다. 들려온 답변은 '무거운 숙제'주면 다음 모임에 결석할 거라는 재치 있는 반응이었다.

경복궁에서 만난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그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거닐었던 그 길 위에서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이 움트기를 기대하며, 나도 이렇게 몇 줄 적어본다. 시간을 거닐며 만난 삶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2025.6.16. 경복궁 영추문을 나서며, by skyoon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복궁 근정전 월대에 올라 근정(勤政)의 의미를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