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 피는 계절에....]
<죄충우돌 인생 2막 61-1호. 2025.9.3>
고향집 반호정사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눈에 아롱거린다.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큰형의 아들 돌잔치에 엄마 손을 잡고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경역에서 12시간 넘게 완행열차를 타고, 노량진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 형님 댁을 꾸역구역 찾아갔다.
엄마는 쌀 한 말을 이고, 나는 사랑이 가득 정이 넘치는 엄마표 김치통을 들었다. 길 위에서는 무거움조차 기쁨으로 바뀌었다.
잔칫상에는 백설기를 가운데 두고 촛불을 켰다. 모두가 함께 형님 내외 아들이자 엄마의 첫 손주의 돌을 축하하며 합창했고, 친지들이 웃음으로 아이의 첫 돌을 축하했다. 이어 나온 음식들 가운데 가장 빛나던 건 불고기였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고기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엄마도 "맛있다" 하시며 연신 젓가락을 드셨다. 누나는 엄마표 김치가 맛있다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런데 일 년 열두 달 기름기라고는 구경도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시골에서 늘 콩나물과 김치로만 끼니를 이어가던 나의 위장은 기름진 불고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나뿐 아니라 엄마도 그랬다. 설사가 줄줄 멈추질 않았고, 급기야 정신이 아득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시골 촌놈아들과 엄마에게 긴급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링거를 맞고 잠들게 하는 주사를 맞은 듯, 그래도 젊다고 4시간 만에 깨어났지만, 엄마는 기력이 더 소진되셨는지 6시간 만에야 병원 침상에서 일어나실 수 있었다. 의사는 기름진 음식에 장이 놀란 탓이라고 했다. 돌잔치의 즐거움은 그렇게 아픈 기억과 함께 내 몸속에 새겨졌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오늘, 우신당원 일행들과 함께 태안의 명품 Golden Bay C.C에서 라운드를 마치고 인근 식당 간판에 적힌 '백 년 불고기'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맥주 한 모금 반 잔에 불고기를 맛보니, 그날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골 촌놈이 처음 맛본 고기 맛, 그러나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던 나와 엄마의 모습. 웃지 못할 그 사건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김이 모락모락 맛있어 보이는 그 불고기는 옛날 생각에 한 입 맛보고 더 이상 목구멍을 태우지 못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48년 전 함께 쓰러져 누워 있던 새에, 그 불고기를 제대로 드셔보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가신 모자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조부부터 선조 기일이면 늘 산적과 탕, 산해진미로 정성을 다하시던 그 손길이, 남편이 하늘로 간 뒤부터는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백 년 불고기집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식당 앞 붉디붉은 백일홍을 바라본다. 꽃잎 사이로 불고기를 먹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던 엄마 모습이 스며든다. 그때의 엄마는 꽃보다도 고왔고 예뻤다
다음 주, 나는 엄마 품으로 간다. 엄마의 머리를 단정히 손질해 드리듯 풀을 베고 묘를 다듬을 것이다. 벌초라는 그 손길은 단순히 풀을 깎는 일이 아니다.
붉은 백일홍 꽃잎 사이로, 엄마의 웃음이 피어난다.
백 년 불고기집, 당초 스산 참게 게장집으로 점심 먹으러 갔으면 엄마를 향한 눈물짓지 않았을 것을, 그 불고기집으로 인도한 박 총장이 밉다. 그럼에도 고향 땅 인근마을 아나고찜에 불고기로 내고향 지역 경제부흥에 앞장 서 준, 박총장이 고맙다.
2025.8.26 골든베이 언덕 인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