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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홀의 버디, 모교 동창 골프대회에서.

by 윤석구

[17번 홀의 기적
, 모교 동창골프행사에서] 좌충우돌 인생 2막 59호. 2025.8.21]

TV 스포츠방송에서 늘 재미있게 시청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단연 고교동창대회 골프코너다. 백미를 꼽는다면 고교 교표가 보이는 모자를 쓰고 나온 MC의 맛깔스러운 진행이 향수를 자극한다.

3년여간 아침저녁 진리탑을 지나 정문에서 성실탑을 바라보며 "성실, 성실" 선생님과 학도호국단 당번 간부들 앞에서 경례했듯이, 카메라는 진출자들의 학교를 탐방하여 앵글에 잡힌 교정모습을 보여줄 때는 우리 학교 대표진들도 진출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있다.


8강, 4강, 2강을 거쳐 드디어 우승팀과 준우승팀이 갈리는 최종 결승전은 모교팀이 아님에도 손에 진땀이 난다. 결승전인 만큼 진출학교 응원단이 함께 현수막을 펼치고 응원도구를 든다. 때로는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 날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듯 응원단 중 한두 명은 꼭 끼어 있다.

승부의 세계는 언제나 늘 승자와 패자가 있는 법. 승자는 월계관을, 패자는 뜨거운 박수로 그리고 다음에 설욕하자는 울분을 떨치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매년 비슷한 고교동창골프 프로그램이지만 참으로 재미있다.

105년의 역사를 가진 모교 동문회의 멋진 1년 행사 중 단연 손꼽는다면 많은 골퍼 동문들이 참가하는 동문골프대회이다. 역사가 어느덧 11회째를 맞이했다. 어느 행사든 봉사하는 분들의 노고로 잔치가 성대하게 진행되는바, 초대 이강조 선배의 노고가 참으로 컸고, 7년 후배부터 여학생도 입교가 되었는데 이경순 국장의 노고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제11회 대회인 어제 행사에서도 빨간 드레스를 입고 각종 시상품을 나누며 진행한, 아나운서 뺨치는 사회 역시 백미였다.


세월이 약인 듯하다. 초창기 이 대회에 참가할 때는 W은행 대전충청본부장으로 현직에 있었다. 그때는 은행의 고객용 사은품을 한 꾸러미 지참하고 참여한 적도 있었다.

당시 '노장불패'를 외치는 대선배 등 20년 이상의 선배들도 참여했다. 하지만 어제의 최고참은 맏형 동기들인 10년 선배 세 분이었다.

그중 한 분은 고향 이웃마을에 사셨고 현재도 협에서 이사장으로 활약하시며, 한 분은 모교 장학금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계셔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기수별 참가 세력은 역시 우리 57기 동기들이 동기골프회원 중심 20명과 여의도지역 금융인 점심모임인 '萬事如意' 포럼 멤버로 한 팀의 일원인 나도 참가, 21명 참가한 우리 동기가 단연 1등이고 후배 기수인 64기들이 버금간다.

수협이사장이신 외유내강의 47기 조성필 선배(농협 근무 40년의 베테랑), 딸부자로 포용력이 뛰어난 49기 도기욱 선배(前 투신사 증권사 임원) 두 분은 오랫동안 동문골프에 '만사여의(萬事如意)' 한 팀으로 참가해 왔다. 예전 제3회 대회 시 나에게 그님이 온 듯 조 선배님의 손기술 딱 한 번으로 보기를 동그라미 파로 만들어 80타에서 79타를 만들어 싱글패(한 자릿수 핸디캡 달성 기념패)를 주어 큰 기쁨의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 싱글패를 보면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또 다른 도 선배와 동기 한 분인 강 선배는 내 친정집 은행에 한이 맺힌 듯 "윤행장, 윤행장" 하시며 대출해주지 않는다며 한을 노래하심에 두세 번 샷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샷건 방식임에도 스타트 1번 홀부터 멋진 드라이버 샷이 비상한다.

캐디피 겸 홀당 매칭 5만 원씩 등록금을 납부했다. 3번째 홀까지 동타가 이월되어 4번 홀에서 장원급제하여 4만 원을 독식했다. 캐디에게 세종대왕 한 장을 건넨다. 그다음 홀에서는 멀리건(첫 타 실수 시 재타 허용)을 받고 파를 했다. 세종대왕 또 한 장의 수확이었지만, 멀리건 받음을 이유로 만 원을 시드머니에 저장했다. 이후 계속 동타가 되어 4만 원을 모은 8번 홀에서 1등 하신 조 선배께 드렸다.

그런데 강 선배 또한 파를 한 것으로 판단하여 일행에게 물어보니 멀리건 파였음을 확인하고 드린 돈을 다시 빼앗는 불경을 저질렀으니, 아 그 노여움을 어떻게 감당하여야 할까. 그늘집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준 돈 왜 다시 내놓았냐 할 수도 없고, 그럼에도 도량이 넓으신 조 선배의 인품을 다시 읽으며 회수한 4만 원 중 후반 홀 들어가면서 조 선배께 2만 원, 응원부대 도 선배 강 선배 두 분께 1만 원씩을 딜러인 나의 직권으로 나눠드리니 해피해피, 입술이 귓가까지 그렇게 웃음꽃 만발 속 소나기 한 차례 맞고 17번에 도착한다.


2주 전의 일이다. 우리 고향 논산의 독보적인 김홍신 대작가 선생님과 선운산 CC와 내장산 CC에서 골프라운드를 가졌었다. 김 선생님의 큰 지혜와 사랑을 받으며 36홀을 밟았다.

대작가님은 나에게 "명재 윤증 선생의 DNA가 있는 듯, 후손답게 정직과 의리의 샷이 일품이다"는 과찬을 하셨다. 준비해 간 공을 동반자께 한 줄씩 선물로 드리고, 내 공에서 한 알 꺼내 존엄하신 선생님의 이름 석 자 새긴 사인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그 소중한 공으로 파 3홀에서 홀인원을 향해 힘차게 때렸지만... 경외로운 선생님을 잘 모셔도 부족할 텐데 함부로 쳤다는 노여움이 있는 듯 그린 3m 전, 또 한 번은 엣지에 머물렀다.

대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잘 모셔도 기운과 행운을 줄까 말까 하는데, 내가 보지 않는다고 내 이름 사인이 들어있는 공으로 때려? 에잇 고얀 놈" 하시는 듯 말씀이 귓가를 울린다.

선운산 CC와 내장산 CC 동반한 박영희 교수님께 티에 올려놓고 사인이 들어있는 공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며 공이 맞지 않는 이유와 지금부터 잘 모시겠다고 덧글도 전송한다.

그런데 마지막 두 홀을 남긴 17번 파 3홀, 165m. 꼭 한 번은 버디를, 홀인원을! 그 존엄하신 김홍신 대작가 선생님의 존함이 새긴 공으로 그 기운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결심을 한다. 선생님께 다시 뺨 갈굼의 불경에 용서를 구한다. 부디 홀인원을, 아니 버디라도... 우드 7번 헤드의 힘, 맞바람을 가르며 멋지게 비상. 그린 입구 그린 안쪽 2m에 안착한 공에 꼭 버디의 행운을 주소서의 간절한 기도를 드리니, 그 기도에 감응했던지 드디어 버디로 마감한다.

삼세판이라고, 그래도 홀인원의 크디큰 사랑은 아니었지만 네 명 72홀 중 버디를 주신 김 대작가 선생님께 멀리서 마음속 감사의 합장을 드리니 "그래, 잘했어, 고마워, 감사해. 역시 윤증 선생 후손이야"라고 선생님 특유의 자상한 격려 말씀이 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버디의 기쁨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카트로 이동 중 예쁜 모자를 쓴 키가 조그만 소녀가 그린을 관리한다. 나의 손은 뒷주머니 지갑을 향하고, 세종대왕 만 원권 한 장이 그 이국에서 돈 벌러 온 소녀에게 나의 온기가 전달된다.
기분 좋은 버디의 마음을 담아.

일행들 모두 놀람의 박수다. 통상 캐디에게 전해질 세종대왕이 왜 그린을 관리하는 이름도 성도 모를 그 소녀에게?

"미안해요. 홍선화 미인 캐디님께 갈 세종대왕이 그린 관리하는 저분께 갔네요."

이미 캐디에게는 캐디피 15만 원에 추가 팁 만 원을 얹어 카트에 놓고 17번을 준비한 상태에서 선배들께 또 한 번 박수를 받으며 보따리를 푼다.

"저의 자랑스러운 학사장교 최창식 동기생이 있는데, 그 동기는 골프장 18홀 라운드 중 꼭 어느 홀이든 버디를 하든 하지 않든 한 번은 그린관리하는 분께 세종대왕 한 장을 주고 있어요."

사연인즉, 어려서 골프장 인근에 살았는데 그 동기의 어머님 또한 골프장 그린관리 등의 일을 하셨는데, 어렸던 시기 어느 날인가 과자 및 아이스크림을 사 갖고 오면서 하시는 말씀이,

"글쎄, 내 장한 아들아. 아 글쎄 보기인지 그 뭐라더라, 보오~지? 라던지 뭐 버디라고 하던가. 아 글쎄 공이 구멍에 쏙 들어가더니 춤을 추면서 손뼉을 치고 모자를 벗고 인사하며 지랄발광을 떨더니, 지갑에서 쑥 꺼내 집에 애기 과자 사주라며 돈을 주는 것 아니겠니."

"들어도 금방 잊어버려. 보~디... 그 뭐라 했는디."

"그 뒤에도 엄마는 몇 번 더 그 맛있는 과자와 아이스크림 부라보콘 등을 사 오신 것 아니겠어!"

동기 본인도 성인이 되고 골프를 치다 보니 그 엄마가 사 온 아이스크림과 과자의 그 원천이 생각났고, 구멍에 쏙 들어가 버디를 하며 홀인원을 하면서 기쁨의 그 발광, 그 돈이 원천이었음을 생각하면서, 그러하기에 18홀 라운드 중 매번 한 장을 그분들께 드린다고!


드디어 18번 홀 티박스. 그 아름다운 홍선화 캐디가 18번 홀 탄착지점을 설명하면서:

"그 17번 그린의 외국인의 돈 1만 원은 엄청 큰돈이고, 오늘 친구들한테 엄청 자랑할 것입니다. 윤 선생님 참으로 멋지시고 훌륭하세요. 1번 홀 드라이버 치시기 전 동반자와 저한테까지도 인사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 멋진 캐디 설명의 탄착점을 향한 마지막 드라이버 또한 멋지게 비상하고, 또 한 번 멋지게 나이스 파로 마무리한다.

제11회 모교 동문 골프대회 역시 풍성한 선물 속에 멋진 후배 염公의 자원봉사 그늘집 막걸리 판매 수익금은, 학창 시절 5만 원 장학금 받았다가 어머님 동의를 받고 학교에 재기부했듯이, 또 다른 후배 누군가의 도서구입 등 아름답게 활용되리라!

거금을 출연하고 멋지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조성목 동문회장 및 골프회장의 영도 아래 105년의 역사는 오늘도 또 다른 추억을 쌓으며 비상하리라. 온갖 궂은일 투철한 봉사꾼 고영진 박사 후배의 헌신과 사랑 또한 영원하리라.


2025. 8. 19 양성이 아닌 음성 땅 코스카 CC에서 by sk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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