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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택 경비원 K Aug 08. 2024

고야옹이

넌 무슨 생각을 하니

부모님은 고양이를 키우신다.

2013년, 당시 중학생이던 막내 동생이 '어미 없이 비 맞으면서 울고 있더라'면서 데리고 온 새끼 길냥이 2마리를 지금까지 키우고 계신다.


집냥이라서 그런지 튼튼하다.

피부병을 한 번 앓은 적 외에는 잔병치레가 없을 정도로 매우 건강하고, 뚱뚱하다!

한놈은 들기도 힘들 정도로 뚱뚱한데, 과장을 조금 섞자면 걸을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까뚱이와 노뚱이


고양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사실 너무 별로였다. 

해외 유학 후 돌아왔을 때 녀석들을 처음 봤는데 '사람이 와도 안 반기는 반려동물이 있다!? 이런 건방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 뭐 안 반겨줄 수도 있다. 당시 사춘기던 내 막내 동생도 크게 안 반겨줬으니.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강아지를 키웠고, 직전까지 키웠던 '똥개' 순돌이가 애정 표현이 남달렀던 강아지였기에 '고양이의 무심함'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했던 우리의 어색함은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우리의 어색함은 내가 고양이라는 생물체를 이해하면서부터 바로 사라졌다.

고양이를 지켜보니 '까칠하다', '무심하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와 달리 매우 애교가 많은 동물이었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강아지의 애정 표현 방식이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고양이도 나름 애정 표현을 하는 동물이더라.

녀석들은 꼬리, 털, 귀, 수염 등을 통해 기분을 드러내고, '갸르릉' 소리를 통해서도 현재의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 집 냥이들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애교도 많이 부린다. 만져달라고 옆에 와서 치대고, 배를 활짝 오픈한 채 알 수 없는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밥그릇에 사료가 없으면 밥 내놓으라고 계속 졸졸 따라다니고.



아무튼 고양이도 매력이 넘치더라. 그래서 '냥냥이파'로 활동 중이지만 와이프가 결혼 전까지 돌보던 처가댁 강아지가 나를 너무 좋아하고, 나도 그런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요즘은 '댕냥이파'로 활동 중이다.


우리는 사람의 인상(느낌)을 표현할 때 강아지와 고양이로 표현하곤 한다.

외모적 표현으로는 '강아지상', '고양이상'이 있는데('뱀상'도 있긴 하다), 이 표현 모두 긍정적인 표현이다. 외모가 귀엽거나, 예쁘다는 뜻이니까.

성격에 대한 표현인 '강아지 같은 성격', '고양이 같은 성격'은 성질이 다르다. 하나는 긍정, 하나는 부정.

물론 고양이 같은 성격은 예민하고, 조용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지만 '까칠하다', '앙칼지다', '엉뚱하다'라는 뜻이 더 강하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특히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바라는 행동을 하길 원했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길 원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마치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남은 남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생각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생각과 행동, 타인과의 관계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주변 사람(남)을 의식하게 되고, 바라는 게 많아지는 것 같다. 이는 직장 경력이 쌓일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리곤 내가 마음대로 세운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면서 '어우 얘는 까칠해', '어우 얘는 너무 예민해', '얘는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어' 등의 평가를 내린다. 웃긴 건 이 부정적인 평가들이 우리의 고정관념 속 '고양이의 성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강아지와 비슷한 사람에겐 매우 호의적으로 대한다. 그 사람이 실제로 강아지 성격을 가졌는지, 아니면 '회사원 페르소나'가 강아지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남을 인상과 행동만으로 평가한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래왔다.

첫인상만으로 (마치 관상을 보듯이)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라는 망상을 했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시 배척했다. 모든 건 나의 기준에 맞춰서 진행됐다. 


내가 '고양이'로 평가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본인은 그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누군가'가 이상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니. 더군다나 강아지 성격도 100% 옳은 건 아닌데.


요샌 우리집 고양이를 볼 때면, 길냥이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희는 너희의 삶을 살 뿐인데 '남(강아지)'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쁜 평가가 나오니. 너희도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애교를 부리고 있는데 '남(강아지)'과 비교하면 그 노력이 상대적으로 덜해보이니.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래서 우리 와이프를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냐옹.





우리 아파트에는 길냥이가 있다. 이름은 로빈이라고 한다. 

근데 이 녀석은 우리 아파트의 터줏대감이라서 길냥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아파트 주민 모두가 녀석을 귀여워하고, 챙겨준다. 집도 있다. 

우리도 가끔식 간식을 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녀석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애교를 부린다. 녀석의 애교는 대단한 게 없지만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 

녀석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그 대가로 츄르를 가져간다. 매우 계산적인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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