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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택 경비원 K Aug 05. 2024

베끼어 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베끼어 씀

퇴사와 동시에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는 유선경 작가님이 지은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유선경 작가님이 직접 발췌한 130여 개의 문장을 오른쪽 노트 페이지에 필사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그래서 정말 좋다. 글을 읽자마자 필사를 바로 할 수 있으니까.


필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 어휘력과 문해력에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대화를 할 때면 내가 구사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매우 한정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쁜 식으로 말하면 좀 짜친(?) 느낌.


그리고 보고서를 읽거나, 책을 읽을 때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읽는 것도 어려워졌다. 양심 고백하자면 팀원들이 무슨 보고서를 갖고 왔을 때 사실 이해가 잘 안 됐는데도 이해된 척을 한 적이 많다.


아무튼 나이는 먹고 있는데 이딴 어휘력과 문해력으로는 남들의 웃음만 살 것 같다는 두려움에 필사를 하기로 했다.


unsplash.com


필사는 하루에 3문장씩 한다. 

3문장이라고 하니 단문 같은데 거의 다 장문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면 박경리 소설 <토지> 중 한 내용을,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 한 내용을, 장영희 산문 <'특별한' 보통의 해> 등이다.


그래서 그런지 손이 아프다.

필사할 글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1문장만 써도 검지와 중지가 아파온다. 필사하면서 배운 내용을 써보자면 손끝이 저릿하고, 얼얼하다. 


아직은 필사의 효과를 모르겠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효과를 따지면 쓰나.


필사를 통해 얻고 싶은 건 위에서 말했듯이 어휘력과 문해력 향상이다.

책을 멀리하고, 스마트폰을 가까이해서 떨어졌다기보단 원래 낮았던 내 어휘력과 문해력이 이번 필사를 통해 조금은 향상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표현력도 풍부해지면 좋겠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건조하고, 단조로운 느낌이 강한데 이번 기회를 통해 말랑말랑, 몽글몽글해지면 좋겠다.


더불어 시인, 소설가가 쓴 아름다운 구절 또는 문장을 마음 한편에 갖고 다니고 싶다. 좀 멋져 보이게.

는 농담이고, 살아가면서 마음 한편에 멋진 구절이나 문장을 갖고 다니면서 그것을 내 원동력으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unsplash.com


신형건 시 <봄날>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봐요.


얼마 전에 넘어져서 팔꿈치에 피딱지가 생겼는데, 요녀석이 자꾸 아프면서도 근질근질해 신경이 거슬렸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필사를 하고 나니 '피딱지가 꽃을 피우기 위해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낫거라. 요녀석아.




근데 글씨 쓰는 게 참 어렵다. 

어렵다기보단 내가 쓴 글씨체가 삐뚤빼뚤하니 너무 못 생겨서 마음에 안 든다.

분명 글씨 예쁘게 잘 썼는데, 펜과 헤어진 시간이 무진장 길었다 보니 손가락에 저주가 걸린 것 같다.


유튜브 보면 글씨 예쁘게 쓰시는 분들 많던데... 나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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