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by 하린

새 연구원이 들어왔다. 잘 다려진 셔츠와 명료한 말투, 그리고 태도에서 묻어나는 자신감.
“저, 이 업무는 보통 어디까지 체크하세요? 홍보는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첫날부터 거침없었다. 초면인데도 반말같지 않은 존댓말로 거리를 좁혀오던 그는 분명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열정을 알면서도, 멀찌감치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는 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점심시간이 되자 그가 다가왔다.
“선생님, 점심 같이 드실래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도시락을 싸왔어요.”
그는 실망한 듯 웃었고,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매일, 그는 나에게 점심을 권했다.

출근할 때마다, 점심시간마다, 밝은 얼굴로 묻는다.
“오늘은 뭐 드실래요? 같이 가요.”
나는 매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도시락, 식욕 없음, 일정 정리… 그 어떤 말도 때론 핑계였고, 동시에 진심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친밀의 열망은 분명 genuine했지만, 그 거리감은 나에게 부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그가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왜 자꾸 대인관계를 피상적으로 맺을까요?”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말끝에는 유감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직장동료라도, 계속 거절당하면 상처받아요. 점심 같이 먹자고 몇 번 말씀드렸는데, 도시락, 입맛 없음… 저로선 좀 그렇네요. 선생님은 대인관계 작업이 필요하실 것 같아요. 허허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짧게 웃고 조용히 대답했다.
“어머, 선생님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해요.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저만의 개인 영역을 지키고 싶은 방식일 뿐이에요.”

그는 다시 한 번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짜 MZ세대 사람이네. 허허허.”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 나는 나의 경계선이 필요한 사람이다. 직장 동료로서의 적당한 거리, 그 선을 넘고 싶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년간 타국에서 살아오며 나는 한 가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이 너무 가까워지면, 언젠가는 존중을 잃는다는 것. 친함을 빌미로 예의를 잊고, 가까움을 이유로 타인을 무례하게 대하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생긴 상처는 결국 관계를 깎아먹고, 실망과 불만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 정도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영역을 침범당하면, 나는 스스로를 숨기고 방어하게 된다.
피상적 관계, 누군가에게는 차가워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앞으로 내 대인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기, 국가시험을 준비하고, 두 개 대학에서 연구원 일을 병행하며 정신적 여유가 한없이 부족한 지금의 나에게는, 이 거리감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그만큼 숨 쉴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타인의 기대도, 요구도 아닌 오롯이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조용한 공기 한 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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