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공허감을 비로소 인정하는것들

by 하린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올해 초에는 조용히 하나둘 정리해 두었다. 큰 그림도 있었고, 소소한 바람도 있었다. 새로 읽고 싶은 책들, 시작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가고 싶은 장소까지. 달력을 넘길 때마다 나는 그 목록들이 조금씩 가까워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매일 작은 계획을 적어두고, 알람을 맞추고, 할 일을 쪼개고, 때로는 밤을 새워 준비하기도 했다.


그런데 9월이 지나갈 때쯤 문득 돌아보니,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되어 있지 않았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들이 무색하게 손에 남은 건, 차갑고 빈 공간뿐이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아직 펼치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고, 메모장엔 실행되지 못한 계획들이 빼곡하다. 폴더 속에는 초안만 남겨진 문서들이 있고, 캘린더에는 완료 표시 대신 취소된 일정들이 더러 있다. 몇 번이고 시도했던 것들은 중간에서 멈췄고, 기대를 걸었던 기회들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의아함보다 먼저 허탈함을 느낀다. 돌아보면 열정이 부족했던 것도,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준비했고, 시도했고, 또 실패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결과는 늘 내 바람과 어긋나는가. 그 간극 사이에서 스스로를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혹시 내가 애초에 욕심이 과했던 걸까?” “간절함이 오히려 내 발을 묶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은 사소한 불안으로 번지고, 불안은 무력감으로 굳어간다.


누군가는 말한다.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시도만으로도 값지다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말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마음속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런 위로를 허락하지 않았다. 노력의 흔적만으로는 공허를 채우기 어렵다. 그 공허는, 마치 오래된 방 한켠에 놓인 빈 상자처럼 말수가 적고 무겁다.


그래도 나는 이 허무를 글로 옮겨본다.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나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에 대해 솔직히 적는다. 왜냐하면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내 것이 되지 못한 현실조차 내 언어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 나를 위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두는 행위 자체가 나를 확인시켜준다. “너는 여기 있었다”라고.


지금의 공허가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말도 또 다른 위안이 되어 버릴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위로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소소한 것들을 허락한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시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10분, 펜으로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을 쓰는 일. 큰 성과는 아니지만, 그 작은 루틴들이 날카로운 허무를 조금씩 둔하게 만든다. 비움은 어쩌면 이렇게 천천히 채워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배운 것은, 공허를 부정하지 않는 일의 용기라는거. 예전 같으면 나는 부지런히 그 공허를 채우려 애썼을 것이다.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끝을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움 대신 솔직함을 선택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내 안의 빈자리를 잠시 인정해주는 행위다.


9월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나는 그 허무를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지. 그게 내 인생인거지 하면서 . 하루하루 작은 일상을 이어가며, 비움을 인정하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언젠가 지금의 빈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설지 안 들어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는 이 공허를 내 방식으로 끌어안고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나는 또 하루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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