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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위로, 조용한 공감

마음을 듣는 일

by 하린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파하고, 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공감하는 것은, 어쩌면 내 안에 그들의 감정을 함께 품는 일이기도 했다.


심리상담사가 된 후,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처음에는 좋은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어떻게 하면 내담자에게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이 이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정답’이 아니라 그저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많지 않다. 감정이 억눌리고, 생각이 쌓이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 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점점 더 마음속 깊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틀린 것이 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곳. 그저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을 수 있도록, 나는 조용히 곁을 지킬 뿐이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제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될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한다.

“그럼요. 여기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아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내 마음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담사가 상담을 받는 일이 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다루는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


그러나 문득 돌아보면, 이 일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따로 있다. 상담이 끝난 후, 내담자의 얼굴에 스며든 조그마한 안도감. 막막했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가벼운 걸음으로 상담실을 나설 때.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그 작은 숨 돌림 하나가 그 사람이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심리상담사로 산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저 함께 고민하고, 함께 걸어가며, 그 길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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