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노래하는 시인과 같다 슬프기도 아프기도 하지만 그의 단어는 아름답다
나는 술꾼이다. 정확히는 술을 사랑한다. 인생은 예술이고 삶을 영위하는 우리들 모두 예술가다. ‘예’는 몰라도 ‘술’은 좀 한다. 기분 탓이겠지만 내가 신나 보이는 것은 순전히 당신의 오해다.
술은 단순하지 않다. 알코올은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다음으로 미뤘다. 니코틴으로 늦추지 못한 문제들조차 차가운 얼음과 알코올이 해결했다. 다양한 맛과 역사를 자랑하며, 인류의 역사를 술의 역사로 대체했다.
맛으로 따진다면 단연 맥주, 와인, 막걸리다. 발효주의 꽃으로 향과 맛을 동시에 얻은 신의 물방울들이다.
무더운 여름 얼음장 같은 맥주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38도의 내리쬐는 태양 아래, 속부터 끓어오르는 보드카를 마시겠다는 바보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살얼음이 얼어있는 유리잔에 시원하다 못해 시린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킨다면, 천국엔 맥주가 없기에, 친구가 다 마셔버리기 전에 마셔야 한다는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
스테이크를 먹는다면 단연코 와인을 선택하겠다. 풍미와 향 그리고 혀끝에 감도는 여운은 쾌감을 배로 높여준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한층 깊어진 육즙이 와인의 산미와 어우러지는 순간, 단순한 식사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된다.
또한 해산물에 화이트와인을 곁들인다면, 식탁 위로 파도와 햇살이 부서지는 지중해를 만날 수 있다.
비 오는 날 지짐이를 먹는다면 언제나 막걸리다. 서양에 샴페인이 있다면 한국엔 막걸리가 있다. 맥주 같은 청량함에 와인과 같은 깊은 맛을 전해주는 흰색의 젖 방울, 발효의 예술이 끝난 뒤에도 효모와 젖산균이 살아 있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숙성되며 짙은 무게감이 스며든다.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민족의 정기와 같은 힘이 있다. 괜히 노동주가 아니다.
술기운 마냥 도수를 조금 올리자면 소주, 위스키 그리고 전통 소주다.
삼겹살엔 드라이한 레드와인도 좋지만, 그래도 소주다. 쌉싸름하고 무미건조한 맛이 느끼함을 씻어내고, 비린 맛마저 감춘다. 육고기부터 물고기까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 없다. 특유의 그 쓴맛은 인생 그 자체다. 소주가 달다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위스키는 요즘 관심 있는 술이다. 강력한 도수에 한 잔, 한 잔 풍미를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매혹적이다. 복잡한 안주가 필요 없이 술만의 깊은 강을 건넌다. 그러면서도 축제 한가운데에서 춤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크통 속에서 더욱 짙어진 향과 맛은 천사조차 탐내어 가져갔다.
그리고 요즘 복원되는 증류주는 흥과 얼이 깃들어 있다. 과연 풍류의 민족이다. 역사의 상처를 딛고서, 지금이라도 다양한 한국의 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깊이로는 큰 호수 같고, 향으로는 푸른 숲과 같다. 분홍빛 꽃이 날리우는 것 같기도 하고 옥빛 천이 혀를 감싸는 듯한 전통주는 삶을 노래하는 시인과 같다. 슬프기도 아프기도 하지만 그의 단어는 아름답다.
주정이다. 술은 주정이 된다. 맥주로 청량함을 채우고, 위스키로 깊이를 더하고, 소주로 인생의 쓴맛을 삼키다 보면, 결국 모든 술은 한 잔의 주정이 된다. 그래도 다행이지. 울지 않고, 서럽다 매달리지 않고, 시끄럽게 소리치지 않은 채 웃고 있으니. 술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인생을 알고, 인생을 아는 자가 어찌 술맛을 모르겠는가. 사실 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술잔에 술이 차면 좋아하는 주정뱅이는 오늘도 술잔을 채운다. 변명 대신 낭만을 채우고, 눈물 대신 달빛을 채운다.
가득 찬 술잔을 높이 들고 읊조린다.
밤하늘엔 달이 다섯 개 있다. 하늘에 하나, 바다 위에 하나. 너의 술잔 위에 하나, 나의 술잔 위에 하나, 그리고 너의 눈동자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