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또 하면 돼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 소년과 남자가 마주 앉았다. 한때 같은 꿈을 꾸었고,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는 두 사람.
“그래서 꿈은 이뤘어?”소년이 말했다.
“응. 그림으로 돈도 벌어봤고, 책도 내 봤지.” 남자가 답했다.
“꿈은 그게 아니었잖아.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거였는데.” 소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게.. 잘 안됐어. 그건. 그리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아.” 남자는 짧게 숨을 뱉었다.
“왜? 할 건데 꼭 그렇게 할 건데.” 소년은 미간을 점점 찌푸렸다.
“미안. 안 한 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되어 버렸어.” 남자는 소년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그대로였다.
벚꽃이 휘날린다. 소년은 엷게 뜬 눈을 비비며 크게 기지개를 편다.
“괜찮아. 또 하면 돼.”
“그럴 수 있을까?” 남자의 눈은 흐트러지는 분홍빛을 쫓고 있다.
“응 몇 번이고, 그러니까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면 돼.” 소년은 무언가 생각난 듯이 웃으며 답했다.
“개구리 왕눈이처럼 말이구나. 그래, 또 일어나면 돼.” 남자도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맞아. 개구리 왕눈이처럼. 필릴리 필릴리 울지 말고 일어나~.” 어느새 소년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남자도 따라 불렀다. 잊고 있던 기억 속 만화 주제가다.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울지 말고 일어나~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 필릴리 필릴리~.’ 소년은 노래를 부르며 벤치에서 뛰어나가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 했다. 잡지 못했는데도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 무엇이 즐거운지 남자는 알지 못했다.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남자도 뛰쳐나가 소년과 함께 벚꽃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허공을 휘저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힘을 주어 빠르게 내저을수록 바람을 일으키며, 꽃잎은 더욱더 멀리 달아났다. 양손으로 잡으려 해도 잎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이번만큼은 꼭 잡고 싶었다.
소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돌이켜 봤다. 일곱 번이었는지 여덟 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몇 번째 넘어지는 걸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분홍빛이 뿌옇게 보이고 햇살에 눈이 시렸다. 눈가를 닦아냈다. 손을 활짝 펴 보았다. 이 손으로,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뭐든 그려내고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손바닥 위로 봄빛 잎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것 봐. 할 수 있다니까.” 어느새 앞에 다가온 소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할 수 있네.” 남자도 미소 지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