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한번 원하는 시간으로 5분 동안 돌아 갈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남겨진 이들은 알지 못했다.

by Rian

마침내 신은 그토록 갈구하던 기도를 들어주기로 했다. 생에 한 번. 딱 한 번 당신이 원하는 시간으로, 5분 동안 돌아갈 수 있다.

부자, 가난한 사람, 여성, 남성, 어린이, 노인, 인종, 국경, 언어. 누구에게나 동등한 5분. 모든 사람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당신은 죽기 직전, 원하는 시간대에 5분간 머물 수 있다. 5분 후 당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어떤 선택도 죽음을 미룰 수 없다. 오직 시간만이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사람들은 각자의 5분을 선택했다.


- 병원의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그에게 온갖 숫자들이 아른거렸다. 희미하게 뜬 눈가로 눈물이 흐른다. 때가 된 것을 깨닫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늦은 밤, 작은 서재, 오래된 책상 위에 컴퓨터와 식어버린 커피잔, 어지럽게 놓인 서류들이 보인다.

“똑.. 똑… 똑…”

문틈이 아주 조금, 천천히 열렸다.

딸아이는 눈을 낮게 깔고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학교에서 아빠를 그렸어요. 아빠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해서…”

38년 전, 그날이다. 아이는 한참이나 문 앞에서 머뭇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지 못한 일들 때문에 그는 무심하게 말했었다.

“그래 책상 위에 놓고 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이번엔 지체 없이 딸에게 뛰어가 꼭 안아주었다. 그림 속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나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작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터지는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마워, 고마워, 아빠가 맨날 일만 하고 같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매일 바빠서 미안해. 아빠가 가장 사랑해.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생각과는 다른 나의 행동에 짐짓 놀랐지만, 작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나도 가장 사랑해. 아빠.”


삐…………. 날카로운 기계음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흐르는 눈물을 사이로, 그를 꼭 안은 다 커버린 아이가 말했다.

“나도 가장 사랑해. 아빠”


-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사방을 덮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유리 파편들이 점점 붉게 변했다. 자동차를 장식하던 꽃잎들은 사방에 흩어졌다. 옆자리부터 확인했지만 이내 선홍빛 장미꽃이 하늘에서 비처럼 뿌려졌다.

박수 소리로 가득 찬 웨딩홀엔 꽃가루가 날리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마주 본 순간. 깨달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넌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너야말로 여기 오면 안 되는데.. 넌 오면 안 되는데…’

‘그래도 우린 같은 시간을 선택했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니까. 제일 예뻤던 네 모습,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었어.’

‘나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5분간 서로의 눈동자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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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에, 모든 순간에 빛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 “정말 별 볼 일 없네.”

죽음마저 평범해 미쳐버릴 지경이다. 미치기 전에 죽으니 다행인가. 그녀는 생각했다. 보통의 삶, 흔한 죽음.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 아무도 모르는 끝. 이루지 못한 꿈들. 홀로 바닥에 누워 있던 그녀의 귓가로 조율 중인 기타 소리가 들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고요해진 관객들, 작은 클럽 안에 무대 위. 24살의 나. 서투른 실력, 실수투성이였던 첫 무대. 삶이 허락한 5분간의 마지막 연주가 시작되었다.

기타 줄을 튕기며 낮은 ‘웅-‘ 소리를 냈다. 관객의 눈동자는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하나둘 음이 쌓이며, 잃어버렸던 것들이 되살아났다. 뜨거웠던 청춘, 숨, 열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한 번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모든 생에, 모든 순간에 빛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마지막 줄을 튕기고, 소리는 천천히 사그러져갔다. 미련도, 후회도 없는 5분이 끝났다. 터질 듯한 환호를 뒤로 무대의 조명이 천천히 꺼진다.


누군가는 후회의 순간을 되돌이키려 했다. 어떤 이들은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돌아갔고, 다른 이는 찬란했던 순간을 다시 맞이했다. 생에 마지막, 가장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남겨진 이들은 알지 못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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