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엔 영광, 탄수화물엔 평화

고탄고지 탈환

by Rian

영광의 단백질에 경배하라.


삶이 고단하다면, 고기가 적은 것이다. 그래도 삶이 힘들다면, 더 많은 고기 앞으로 가야 한다.

육즙과 풍미가 넘치는 마이야르의 강을 헤엄쳐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자.

뜨거운 열기에 축이나는 몸뚱이를 이끌고도, 한겨울까지 견디게 해준 것은 유구한 전통의 복날. 고기로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오랜 선조들의 지혜이다.


추운 입김과 뿌옇게 김 서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삼겹살집처럼,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두터운 외투를 의자 밑에 넣어도, 그 향기는 머리부터 양말까지 깊게 배여 고기와 하나가 될 것이다.


오랜 고민이었던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나누지는 말자.

불판 앞에 모두 평등하다.

그날 사정에 따라 먹으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을 편파 없이 받아들이자.

닭은 비교 대상에 끼지도 못했지만, 언제든 다리를 내어주었으니. 고기 앞에 구별은 의미 없다.

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불건전한 사상은 배제하자. 혐오와 억압으로 채워진 그들은 촉촉한 참소스에 찍어 먹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비록 노쇠하여 아침부터 삼겹살을 씹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나, 그 은혜로운 기름을 입술에 바르고, 고기 향으로 작은방을 채우며, 부내 나는 삶이 별거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잊은 적 없다.


IMG_3977 copy.jpg


평화, 평화, 평화로다.


이유 없이 화가 난다면, 빵집 앞으로 달려가자.

마지막으로 달려본 것이 언제인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괴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이들은 협작꾼이요, 사술을 부리는 자다. 그들의 구슬림에 현혹당하여 ‘저탄고지’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고탄고지를 탈환해야 한다.


그 시작은 한 공기였으나, 끝은 두 공기였으리라.

고깃집에 가서 실컷 고기를 먹어도, 마지막에 식사하실 거냐고 물어본다. 먹는다는 것의 근본은 밥이다.

무릇 조선 사람에겐 밥이 아닌 것은 식사가 아니다. 찰진 쌀밥을 숟가락으로 푹푹 퍼, 은근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야, 한 끼를 먹은 것이다.


명심하자 빵은 간식이요, 국수는 요기 거리이다. 쌀 한 톨 삼키지 않았다면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은 하지 않되, 구별은 해야 한다. 이는 도리요, 명분이자, 예의다.


슬프게도 라면을 끓여도, 밥을 말아 먹지 못하는 양이 되었다. 고속노화의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하늘은 왜 식욕을 낳고, 그에 부합하는 위는 낳지 않았는가.

빈 찬합을 받고도 배부름에 다행이라고 중얼거렸을 나의 모습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글을 읽고도 감흥이 없다면, 지금 당장 고기 와 밥 앞으로 가야 한다.

흰쌀밥 위에 올린 한 점의 고기가 삶을 다시 이끌어 줄 것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꿈의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