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 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됐다

퇴사 후, 20년 친구들과 홍콩으로 떠난 일탈의 기록

by 이레

그날, 나는 떠났다. 퇴사라는 끝과 여행이라는 시작이 만난 순간이었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오직 나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날.



캐리어를 싸며, 나는 나를 꺼냈다

12월 31일, 사람들은 한 해의 끝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날, 사직을 했다.
수년간 입었던 간호사 유니폼을 벗고, 사직서를 낸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 정신없이 보내온 시간들 사이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휴식 같지도 않은 휴직, 사명감과 탈진 사이를 오갔던 감정,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를 잃어버렸다는 자각.

그 와중에 문득 떠오른 약속이 있었다.
수개월 전, 근무표를 조율하며 수십 번 단톡방에 "이 날 빼줘 제발... 오프신청 제발!!!"을 외치던, 간호사 친구들과의 여행. 20년을 함께해 온 대학 동기 여섯 명. 이 여행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캐리어를 꺼내 들었다.
아이의 장난감도, 남편의 면도기도 없는 캐리어였다. 이번만큼은 오롯이 내 물건만 담기로 했다. 좋아하는 립스틱, 새로 산 원피스, 숙소에서 입을 파자마까지. 하나씩 담을수록 낯설고 묘한 해방감이 퍼졌다.
'아, 이건 진짜 나를 위한 여행이구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여행하는 나로 살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권을 꺼낼 때도, 면세점에서 쇼핑을 할 때도, 아이 밥시간이나 가사 걱정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벼워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었던가 싶었다. '누군가의 무언가'가 아닌 상태. 이토록 자유롭고 생생한 기분은 참 오래간만이었다.

홍콩의 거리는 화려했고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쳤다.
침사추이의 야경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스타의 거리에서 서로의 발자국을 밟고 웃었다. 명동보다 북적이는 야시장에서 우리 여섯 명은 닭날개 하나에 감탄했고, 호텔 침대 위에서는 중학생처럼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다시 스무 살이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아도 충분했던 시간.

그저 나 하나만으로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랜만에 실감하고 있었다.


20년 동기들과의 여행, 소중한 관계의 재발견

함께한 친구들은 모두 간호사였다. 누군가는 대학병원에서 누군가는 보건교사로 학교에서, 정신보건센터와 개인병원에서 각자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화장실 갈 시간은커녕 물한 모금의 여유도 없이 감정 노동과 신체 피로를 버텨내고 있었다. 매번 짜내듯 시간을 뺏어가며 만들어낸 6명의 휴가는 그 자체로 기적 같았다.

그 고단함을 알기에 우리는 여행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종종 울컥했다.
누구보다 서로의 고단함을 알고 있었기에, 짧은 수면시간과 무거운 감정을 안고 일해온 모습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여행은 그런 서로의 '수고'를 조용히 껴안아주는 시간이었다.
돌아가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그 며칠만큼은 온전히 친구로, 한 인간으로, 따뜻하게 연결된 존재로 머물 수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날, 나는 전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남편에게 "잘 다녀왔어"라며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 속에는 홍콩 거리 위에서 웃던 내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여행은 내 삶에서 일시적인 쉼표가 아니라, '숨겨져 있던 문장'을 다시 읽는 과정이었다.

퇴사 후의 공백기,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분명한 건 하나였다.
나는 나를 회복했고, 나를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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