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팅 시간이 되었다. 미팅 장소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가이드는 진행하는 폼이 아직 서툰 것 같았다. 티켓과 여행 스케줄 등을 받고 서로 인사도 없이 게이트로 나갔다. 출국할 때까지 다소 여유가 있어서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탐나는 물건들도 많고, 사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공항 면세점에 올 때마다 세련된 디자인과 조명 등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되고는 한다. 매스컴과 문명의 이기 속에 사람들은 점차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른 체 맹목적으로 모든 이들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갖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허상을 찾는 방랑자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된다. 유독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갈수록 생각도 모습도 정형화되고 표준화되어 가는 듯 보인다.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형이 되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도 정해놓은 기준 이상이 되지 못하면 심각한 좌절에 빠지는 병적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자연품이 아닌 반쯤은 인조인간이 되어가는 현상 이것을 사회화라고 말해야 할까? 이런 현상은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자기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미움과 질시, 질투 속에서 우리들은 분열되어 가고 있다. 아무도 사랑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심리적 사막 상태에 빠져서 삶이라는 동굴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나도 또한 그러하다.
마드리드로 환승하기 위해서 내린 두바이 공항 선크림 하나를 사들고 출국 장소로 가서 기다렸다. 짐작으로 함께 산티아고로 떠나는 이들인 듯했다. 출국을 기다리는 이들은 설레는 듯도 보이고 조금은 긴장한 듯도 보인다. 더러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면서 하나, 둘 멤버들을 인지하려고 노력했다.
가이드가 패스포트와 여행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두바이로 떠날 승객들은 출국을 위하여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탑승구 입구에 줄을 섰다. 조금 있다 출국 수속이 시작되었다. 안내양이 티켓을 확인하며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트랩을 따라 걸었다. 좌석을 찾아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좌석은 불편하지 않았다. 나오는 식사들도 나름 먹을만했다. 두 번의 기내식을 하고 잠을 자다 깨다 하며 두바이공항에 도착했다.
두바이공항에 도착하여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반 은 졸고 있는 상태였다. 낯선 공항 길을 걸어가는 내내 화려한 명품 샵들이 눈길을 끌었다. 낯섦은 새로움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도 한다. 나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복잡한 두바이 공항 내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낯선 외국인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아랍인들이 많이 보였고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큰 눈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을 볼 때마다 신비스럽다. 그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가가 가끔은 인터넷 뉴스를 달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그들에 비하면 여성들이 살기에 보다 나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부딪치기도 하고 때로 눈이 마주치기도 하면서 새로움에 각성이 일어났다. 아직 탑승 시간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잠을 자다 일어나 비몽사몽 간에 이동을 한 탓에 한쪽 구석에 대충 자리를 잡고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나니 탑승 준비하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짐을 챙겨 들고 멤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탑승구에 줄을 서서 제법 긴 시간 동안 기다렸다. 몹시 혼잡했다. 드디어 마드리드로 출발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여행지를 찾아가는 기내에서 시간을 견디는 것은 참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두바이 공항 푸드 코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우리나라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올라 팜플로나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의 풍경은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이었다. 더러는 언덕 같은 곳으로 잘 정돈된 마을들이 보이기도 했다.
팜플로나에 첫 번째 숙소인 호텔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긴 여정으로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대형 캐리어 하나, 작은 캐리어, 그리고 메고 다니는 백팩 이동할 때마다 이 짐을 들고 다녀야 한다. 들 수도 없는 버거운 짐을......
산다는 것은 모두 자기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짐이 너무 무겁다고 투덜거리고, 어떤 사람은 남의 짐까지 지고 가며 보람을 느끼고, 내 짐 하나라도 지고 가겠다고 기꺼이 삶에 맞서기도 한다.
‘나는 어떻게 내 짐을 지고 살았던가?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만큼 이 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야 할까?’
다행히 호텔 가이드들이 짐을 방으로 옮겨 주었다.
방으로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도착 시간이 일정보다 조금 늦어져 짐만 갖다 놓고 저녁 식사를 빨리해야 한다고 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여행지에 음식을 별 거부감 없이 잘 먹었던 나였는데 그날 제공 된 음식은 먹을 수가 없었다. 돼지고기 숙성시킨 것과 비스킷, 약간의 빵과 과일,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식들이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여행을 리드하는 총관리자가 첫날 첫 식사 자리여서 멤버들에게 돌아다니며 와인을 권했다. 난 술을 잘 못하지만 권하는 술을 받아 아주 조금 마셨다.
두바이 공항 긴 시간 비행한 데다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약간 마신 술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방으로 돌아오니 온몸에 한기가 들고 속이 뒤틀려서 토하기 시작했다. 토사광란 수준의 고통이 밀려왔다. 변기통을 붙잡고 토했다. 나는 술에 취하면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고 물을 마시면서 속을 모두 비워내야 한다. 토하고 또 토하고 물을 마시면서 토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비로소 몸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속을 비우고 나니 온몸이 덜덜 떨렸다. 따뜻한 물 한잔 먹고 싶었다. 그런데 포트도 없고 물도 없었다. 속이 뒤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는 나는 가지고 온 누룽지를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서 불려서 먹었다. 그랬더니 조금씩 토사 광란기가 가라앉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탕 안에서 잠이 들었다. 물의 온도가 낮아져 서늘함이 느껴졌다. 알몸으로 침대로 들어와서 이불을 덮었다. 참 포근하구나! 참 편안하구나! 몽롱하고 나긋한 상태가 되었다.
창문 밖으로 호텔 정원이 불빛을 받으며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참 신비로웠다. 4월 팜플레나의 밤은 고요했고 쌀쌀했다. 불어오는 바람과 어두운 밤거리 그리고 낯선 이들, 이제 시작하는 산티아고 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불안함 등이 교차하며 낯선 곳에서의 첫 밤이 이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가슴엔 하나 가득 채울 수 없는 고독과 황량함이 차 올랐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이국에서 이렇게 밤을 맞이한다는 것이 또다시 오직 혼자라는 사무침이 가슴으로 저려왔다. 어차피 인생이 홀로 왔다 홀로 간다고 하나 그래도 혼자라는 사실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마치 고아가 고아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바로 그 느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에서 저마다 의미를 찾고자 한다. 내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는 얼마만큼인가? 나는 어디로 지금 가고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함께이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존재! 남과 다르기를 꿈꾸면서도 다른 사람과 동질성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알 수 없는 존재! 알수록 의미가 모호해지고 찾을수록 잃어버리는 카멜레온 같은 존재! 내가 바로 그런 인간 중에 하나이다.
여행의 시작 점 팜플로나호텔에서 나의 첫 밤은 이렇게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