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현지 가이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몇 가지 알려 주었다. 그중 “떼아모”와 “부엔 까미노”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떼아모”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이고 “부엔 까미노”는 ‘좋은 순례길’이란 뜻이다. 이 두 마디 속에 산티아고 여정의 의미와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느 나라 말이든 영혼을 울리는 떨림 같은 것이 있다. 사랑을 크게 에로스적인 것과 아가페적인 것으로 말하고들 한다. 아가페적인 사랑은 신성을 띤 사랑이라면 에로스적인 사랑은 남녀 간의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이 발현되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타인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는 에로스적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 사랑이 스쳐가는 사랑일 수도 있고 생을 함께 하는 사랑일 수도 있다.
드라마나. 소설, 영화, 노래 등 모든 예술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고는 한다.
수많은 사랑 영화 중에서 내 가슴에 깊은 슬픔으로 남아있는 작품은 5일의 마중이다. 2014년 장예모 감독이 중국 문화혁명 당시 공리, 진도명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돌아온 남편으로 열연했다.
무용가를 꿈꾸는 딸 딘딘과 함께, 펑은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당으로부터 남편이 탈영했으니 집에 돌아오면 신고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가슴을 졸이며 혹시 하는 맘으로 남편을 기다리던 펑에게 남몰래 집에 온 남편은 함께 도망가자며,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몰래 이를 듣고 있던 딸 딘딘은 무용가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아버지를 신고하여 남편은 체포되고 만다.
펑은 딘딘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간다.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5일이면 돌아오겠다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펑은 기차역으로 마중 나간다. 하지만 돌아오겠다는 약속의 날이 어긋나게 되고 펑은 남편을 맞이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후 남편은 집에 돌아왔지만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돌아온 남편은 펑의 기억을 되돌리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펑은 끝내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달 5일이 되면 피켓을 들고 남편을 마중하러 역으로 간다.
역에 도착한 사람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두리번거리며 남편을 찾는 펑과 그 펑을 바라보는 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20년이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기다림에 너덜거려진 그녀의 사랑은 남편이 떠났던 그 순간에 머물러 버렸다. 기다리던 남편이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을 찾아 헤매는 아내, 아내를 찾아왔건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영원히 알아볼 수 없는 그들의 박제된 사랑이 슬펐다.
천재적인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과 로뎅은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작품으로 승화한다. 그중 ‘입맞춤’과 ‘중년’은 두 사람의 사랑을 형상화한 빼어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예술품이다.
로뎅의 입맞춤은 지옥의 문에 넣으려던 것이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은 몰입의 순간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 느꼈던 로뎅의 아픔이 얼마 큼인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작품은 시동생 파올로와 형수 프란체스카와의 금지된 사랑이 주제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입맞춤하는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을 목격한, 남편이자 형이 쏜 화살을 맞고 그들의 사랑은 정지된 채 지옥을 떠돈다.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금지된 사랑은 마치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목마름으로 지옥에 던져지고 만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깊은 감동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받은 듯하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지옥의 문’에 넣으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단독 작품으로 오픈됐다. 로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했던 카미유 클로텔과 자신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아내가 있었던 로뎅은 매달리는 카미유를 버리고 돌아섰다. 그녀를 떠나 아내에게 돌아가는 로뎅을 붙잡으려는 카미유 클로델의 마음을 표현한 ‘중년’은 볼 때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애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내의 손에 끌려가는 로뎅의 모습도, 애원하며 돌아오기를 간청하는 그녀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숙명 앞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안타까웠다.
“떼아모”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코끝이 찡하고 명치 끝이 아리다. 왜 이처럼 사랑한다는 말 앞에 난 언제나 깊은 슬픔에 빠져드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옅어지는 것일까? 삶의 거친 언덕을 헉헉거리며 달려온 어느 날 문득, 지는 노을 속에 흐른 눈물 자국이 얼룩진 눈빛 사이로, 갑자기 닥쳐온 벼락같은 사랑이, 짙어오는 어둠의 바다로 침몰하듯, 영혼을 끌고 가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산티아고 여정은 사랑을 찾고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부엔 까미노’가 좋은 순례길을 기원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뜻은 ‘좋은 삶’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에로스에 아가페가 더해져야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5일의 마중에서 남편과 아내는 에로스적 사랑을 넘어 아가페적인 경지까지 도달한 사랑이다. ‘입맞춤’과 ‘중년’은 에로스적 사랑의 한계에 멈춘 사랑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쩜 가장 인간의 본성적 감정의 극치를 끌어내는 신과 맞닿은 창조적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떼아모”는 예수의 삶이었고 “ 부엔 까미노”는 그 삶을 찾아가는 여정 끝에 다다르는 궁극의 지향점이다. 우리에겐 모두 “떼아모”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그 “ 떼아모”를 완성해 가기 위해 희로애락애오욕을 맛보며 살아간다. “부엔 까미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고 산티아고 여정에서 찾고자 하는 참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