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삶은 처음이다.

삶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여서 언제나 처음이어서 살만한 것이다

by 이슬

인천국제공항에 미팅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기는 그래서 택시를 타고 왔다. 아들, 딸, 사위가 버젓이 서울에서 살고 있건만 다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굳이 하는 맘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서운해지는 맘은 무슨 마음인가? 남편이 산티아고로 떠나던 새벽 눈마중도 하지 않고 보낸 내 못된 행실이 문득 코끝을 찡하게 했다.

항상 쫓겨서 세계적인 공항이라는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청사를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었다. 공항을 둘러보면서 문득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고 했던 어떤 철학자의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맞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 살고 있다. 던져진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그 현장에 있는 자신의 몫이다. 그러면서도 만족하지 못할 때 왜 항상 곁에 있는 이들을 탓하게 되는 것일까? 그토록 함께 가기를 열망했던 아내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길고 긴 여정에 올랐을 때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애처롭기도 했지만, 그 맘보다 깊은 원망과 분노가 나를 싸늘하게 했다. 바쁘고 분주한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내 맘 한쪽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꼿꼿하게 뱀처럼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나를 보며 실소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캐리어를 탑재한 후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는 온갖 상념들을 밟으며 이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담벼락이 옛 거리의 모퉁이를 연상하게 한 입구에 내려섰다. 운치 있게 펼쳐져 있는 카페에는 몇몇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여유로워 보였다.

전통 예술품 전시관에서는 도자기와 미술작품 및 고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청자는 그 고결함이 볼 때마다 몸가짐을 바로 잡게 한다. 은은한 묵향이 한국화들이 흑백의 조화 속에 깊은 여운을 안겨 주었다. 하나의 예술품에는 예술가의 혼과 기원이 담겨있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혼과 독자의 혼이 교우할 때 깊은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예술처럼 창조적인 과정이다. 특히 부부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 간의 만남은 가장 경이롭고 신비한 창조의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이 에로스와 타나토스라고 했다. 에로스는 삶의 의욕과 생명을 타나토스는 죽음과 파괴적인 공격성이라 주장했다. 에로스에 격렬한 흥분과 강한 몰입이 있듯이 타나토스에도 그에 못지않은 희열과 격정이 있다. 양극은 통한다고 했는데 어쩜 삶과 죽음은 창조와 파괴는 한 몸의 두 얼굴인지도 모른다. 한번 창조된 가족은 가정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쁨과 희열, 슬픔과 고통, 삶과 죽음이라는 여정을 통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자손을 통해서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하고 섬뜩한 일인가?

인천 국제공항 111.jpg 인천 국제공항 한식집

가정은 공항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계를 펼쳐가는 토대, 터전이다. 출발선이라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가가 어쩜 삶의 반은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인도의 뉴델리 공항이 떠올랐다. 2018년경 교직원단체에서 특별기획한 이벤트 코스였다. 공항에 내렸을 때 코의 점막을 마치 바늘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나는 코를 막고 다녔으나 1월인데도 무더운 데다 숨을 쉴 수 없어 고통이 여행 기간 내내 견디므로 어려웠다. 코의 점막을 통해 머리에 이어 목까지 그 찌르는 듯한 아픔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상당한 기간 병원 치료를 받을 만큼 심했다. 인천국제공항과는 시설이나 절차 과정이 비교할 수 없다. 인도인들의 삶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 실상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여인의 깡마른 몸과 지나는 우리를 바라보던 눈빛, 인력거, 오물로 뒤범벅이었던 거리, 헐벗은 아이들의 구걸 왜 인도에서 종교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쏟아져 나오던 하교 길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인도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잘 준비된 인천국제공항 같은 플랫폼에서 삶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인도 뉴델리 공항 같은 곳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인도를 빠져나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낯선 미지의 혹성에서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여행지에서 인도여행은 가장 신비하고 특별한 경험이어서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영혼의 발원지가 되었다.

인천국제공항 청사를 둘러보면서 한 번도 살뜰하게 바라보지도 않았고 가슴에 품어보지도 않았던 나를 발견했다. 난 결혼이라는 것이 잘 갖추어지고 준비가 된 마치 누리기만 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이 해야 하는 몫이라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남편에게도 결혼은 처음이고 삶은 호기심과 두려움에 가득 찬 미지의 세계였다는 것을, 삶은 인천국제공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인도 뉴델리 공항 같은 것이라는 것을, 내가 나쁘다고 밉다고 소리치고 외면했던 남편의 행위들이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한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항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상념에 뒤채이다 보니 어느새 미팅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지는 것이 바라다보이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했다. 식당가에는 한국 음식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디자인된 음식 메뉴판이 사진으로 음식점 입구마다 잘 게시되어 있었다. 언어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명가의 뜰 된장찌개

산티아고로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일상의 것들을 하나씩 음미하며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여정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공항에 서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떨림이고 호기심이다.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일이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이렇게 공항에 서니 그래도 좋았다. 조금 부족하지만, 비록 가족의 배웅도 받지 못했고 함께 가자던 남편도 외면하고 홀로 떠나는 여행이지만 떠나니 기대가 된다.

삶은 언제나 처음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서툴다는 것이다. 익숙한 삶만 산다면 안전이야 하겠지만 끓어오르는 열정은 맛보지 못할 것이다. 삶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여서 언제나 처음이어서 살만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공포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슬픔이나, 아픔일지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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