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Albergue) 알베르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
“거기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어. 여행 온 모든 사람이 화장실, 샤워실을 같이 쓰고 잠도 같은 방에서 자”
남편은 알베르게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는 의문과 함께 두렵고 불안했다. 그 상황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알베르게는 숙소, 숙박지, 작은 호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알베르게는 개인, 지자체, 성당 등에서 운영하는데 오늘 알베르게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우리가 첫 번째로 묵게 되는 알베르게 이름은 지트리 쉬망 베를 레뚜알이란 곳이다.
주도로에서 한 불록을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는 어귀에 있는 알베르게를 발견하고 이제 들어가 쉴 수 있겠다 싶어서 반가웠다. 빗방울이 부슬거렸다. 무엇보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웠다.
알베르게 알림판
‘지트리 쉬망 베를 레뚜알’이란 문패를 보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순간 덜덜 떨고 있는 여행객들에게 다소 쌀쌀해 보이는 주인의 태도와 말을 듣고 ‘참 사무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모습들과 대비가 되었다. 친절하고 여행객들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친절함이 그리웠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가랑비를 맞으며 거리로 나갔다. 근처에 있는 상가를 둘러보았다. 여행자들을 위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마음이 가는 것이 없었다. 아직 알베르게에 들어갈 때까지는 더 기다려야 한다.
점심 때가 되어서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음식점들을 둘러 보았다. 리베강 다리를 건너서 노트르담 뒤퐁 성당 근처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주로 육식이나 생선 등이었는데 이 도시의 독특한 소스와 조리법을 사용한다고 했다. 먹어 본 이들이 양고기가 좋다고 해서 주문했다.
알베르게 로비(Lobby)조금 있자,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긴 양고기는 거무스름한 색을 띠고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것이 보기에 벌써 역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을 생각해서 억지로 입에 음식을 넣었지만, 구역질이 올라왔다. 서빙하는 분께 뜨거운 물과 그릇을 부탁했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있는 누룽지를 물에 불려 먹었더니 속이 좀 가라앉았다. 누룽지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 챙겨 준 남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누룽지는 영양은 물론 건강까지 지켜 줄 수 있는 우수한 비상 식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을 근처를 둘러보고 알베르게 숙소로 향했다. 드디어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알베르게로 들어섰다. 삼 층으로 된 알베르게는 현관에서 투숙객들을 맞이이하며 아주 사무적으로 부직포로 된 침대시트와 베게 시트를 주었다. 안내랄 것도 없이 우리 팀 인솔자들이 방을 배정했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알베르게 숙소
방 안으로 들어가니 네 개의 이층 침대가 사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남자 두 분과 여자 다섯 명이 각각 배정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들었던 대로 남녀가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화장실 두 개, 샤워부스 4개로 약 40 여명이 하룻밤을 공유하게 되었다.
신기한 알베르게를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화장실도 확인하고 샤워부스도 가 보았다. 문짝 하나 크기 면적의 화장실 4개와 그 정도보다 약간 큰 공간의 샤워부스가 이층에 설치되어 있었다. 일 층은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로비와 식당이 있었다. 친절하게 이 알베르게는 간단한 식기 도구들도 준비해 놓았다.
여행 중 식사는 여행사가 예약이 된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은 각자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식당이 있는지 여부는 여행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들어오는 입구 쪽 벽에 벽화처럼 산티아고 로드가 그림지도 형식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그런 듯하다.
짐을 푼 사람들은 샤워하고 화장실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데도 별로 분비지 않았다. 그야말로 물로 땀을 씻는 정도의 수준으로 샤워만 했다. 샤워실에 옷을 걸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벗은 옷과 갈아입을 옷을 걸쳐 놓고 최대한 빨리 씻고 다음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다소 불안한 첫 알베르게에서의 밤을 맞이했다. 텔레비전도 없고 더 할 수 있는 일들도 없어서 다음 날 일정을 듣고 모두 침대에 들었다. 같은 여행사를 통해서 가게 된 사람들끼리 아직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 모른다. 굳이 알 필요도 없을 듯하기도 하다. 천천히 서로 만날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아니어도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우린 만남에서 많은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만남에서 가장 많은 슬픔과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이제 와서 새삼 인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될 수 있으면 만나지 않고 만나지 말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산티아고 순롁객
밤은 깊어 갔고 내일 산티아고 로드의 출발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이 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웠다. 다섯 명의 사람이 각자 다른 꿈을 꾸며 같은 길을 떠나는 선상에 섰다.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같은 여행사를 통해서 왔다는 하나의 사실이 어쩜 우리들을 옭아매는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모이면 역동성이 생기고 그곳에서는 다양한 군상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과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이 내 맘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산티아고 로드 벽화마드리드 공항에서 내려 팜플로나 호텔에서 맞이 한 첫날 밤은 조용한 설렘이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그런 것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여행길에서는 모두 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같은 방을 쓰며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산티아고 로드는 어쩜 삶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원시시대의 공동생활 같은 것은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만 제공되는 곳, 친절도 없고 서비스도 없다.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선택도 없고 차별도 없다. 그냥 산티아고 로드에서 모두는 생존을 위해 걸어가는 생명체로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체험하는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