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오레아가)~ 론세스바에스(Roncesvalles)

비 내리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4. 15)

by 이슬

알베르게에서 첫날밤을 지낸 우리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세면하고 나름대로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이 알베르게는 다행히 식당이 있어서 준비해 온 재료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잘 먹지 않았는데 피레네산맥을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해서 누룽지를 뜨거운 물에 불려서 먹었다. 신기하게도 열악한 시설임에도 사람들은 세면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무리 없이 하룻밤을 잘 지냈다. 그리고 웬일인지 모두 깊은 잠을 잤다. 나도.


생장을 떠나 피레네 산맥으로 들어서는 모습

드디어 오늘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된다. 우리가 가는 루트는 프랑스 까미노(Camino Frances`), 까미노나바로(Camino Navarro), 나폴레옹 루트 등으로 불리며 여행객(순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까미노이기도 하다. 프랑스 까미노 루트는 나폴레옹 루트와 발 카를로스 루트 두 구간이 있는데 나폴레옹 루트는 피레네산맥을 넘어가기 때문에 난도가 높은 코스이다. 피레네산맥을 걸어서 넘기는 어렵지만 순례자 대부분은 이 코스를 선호한다고 한다. 생장에서 콤포스텔라(Compostela)까지 800km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생장의 오레아가라는 마을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거리는 26km가량이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세스까지 안내지도

침묵하던 계절, 겨울을 지나 산과 들 만물이 깨어나는 봄 4월에 피레네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부풀었다. 비안개에 흐려진 길가에 부슬거리며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피레네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첫날 여정치고는 버거운 일정이다. 여행자들은 우비를 챙겨 입고 등산지팡이를 들고 배낭을 멨다. 인솔자의 간단한 안내를 듣고 하나, 둘 오레오가를 떠나 론세스바에스로 향했다.


흰 구름과 비에 젖은 길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

산을 오르는 일은 생소하다. 어쩌다 남편과 함께 산이라도 오를 때는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헉헉대며 힘들어서 주저앉고는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침마다 뒷산을 뛰어올랐다가 출근했다. 난 제비처럼 날쌔고 몸이 민첩했다.


결혼 후 생활의 변화로 마음이 피폐해졌고, 출산과 육아, 가사 노동 등으로 날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특히 임신, 출산은 내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었다. 난산이었다. 산통이 길었고 의사도 간호사도 절절맸다. 양수가 적어서 마른 아이를 출산하기 때문에 산모와 아이, 둘 다 위험한 순간을 마주하며 간신히 아이를 세상에 내보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고 튼튼했다.

출산하기 전날까지 난 학교에 출근하여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지도했다. 출산 후의 난 사람이 아니었다. 온몸이 피폐해진 나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1년, 2년 출산 후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육아하고 살림하느라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제발 하루라도 푹 잠 한번 자고 싶었다. 남편도 나름대로 직장 다녀와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이를 돌보다 일어나 출근하고는 했다. 남편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들어서면서 난 왜 이 순간 출산의 고통과 육아와 가사 노동의 피폐한 시간이 떠올랐을까?


나폴레옹이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병사 대부분을 잃고 고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만큼 이 길은 악명이 높은 길이기도 하다. 평생 처음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산행을 나섰다. 앞으로 닥쳐올 일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철부지처럼 들떠서 일행들과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넓고 푸른 초원 위에 조금씩 내리는 비와 비안개에 젖은 생장에서 마을을 빠져나가 피레네 산맥으로 접어드는 길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빨간 지붕에 하얀 벽의 집은 푸른 초원과 조화를 이루며 비안개에 젖어 다가오고 멀어지고 하였다. 두고 가기 아까운 풍경들을 뒤로하며 처음엔 기세 좋게 제일 앞장서서 걸었다. 일행에게 같은 길도 앞에서 걸으면 덜 힘들고 뒤따라 걸으면 더 힘들다며.


비바람 속에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

그런데 점점 갈수록 비바람은 심해졌고 올라갈수록 기온은 내려갔다. 우비에 등산지팡이, 젖은 신발, 젖은 옷 그런데 멋모르고 청바지를 입었다. 비가 오자 다리를 타고 올라온 빗물이 온몸을 적셨다. 한기가 들고 몸이 덜덜 떨렸다. 누룽지로 때운 아침, 배도 고프고 걸음은 점점 느려졌고 한 발 한 발 발을 옮길 때마다 무거운 자석이 붙어 있는 듯 힘이 들었다. 비는 더욱 거세졌고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무거운 다리를 간신히 들어 올리며 걸었다. 뒤에 오던 일행들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점점 일행에게서 멀어졌다. 배낭 속에 간식이 들어 있었지만, 우비 때문에 배낭을 내릴 수도 없었다.


처음에 함께 길을 나섰던 일행이 빗속에서 간식을 먹으며 내게 나눠주었다. 받아먹을 손도 이것저것 들려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달콤한 초콜릿이 목으로 넘어갈 때 살 것 같았다. 뒤처지는 일행을 케어하던 가이드가 먹을 것을 챙겨주며 옆에서 나를 돌봐주었다.



높은 고도 속으로 전진

안개가 산과 계곡에서 스멀거리며 피어올랐고 안개가 휩쓸고 지나가는 틈틈이 보이는 경관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갈수록 경사도 높아지고 있어서 점점 피로도가 올라왔다. 쉴 만한 곳이 하나도 없는 비안개가 쓸려가는 산등성이 길을 그야말로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데 안갯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긴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곧고 풍성하게 가지를 뻗고 하늘을 향해 방사형으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와~~ 무지개, 무지개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내리는 비가 조금씩 멈추는 듯하더니 먼 산허리에 무지개가 떠 올랐다. 마치 우리들의 어려움을 다 안다는 듯 잘하고 있다는 듯 무지개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무지개는 신이 우리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징표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신과 무슨 약속을 했을까? 무지개를 보았더니 없던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비 내리는 피레네 산맥에 무지개가 떠 있는 장면


조금 더 걸어가자, 언덕 위에 카페 하나가 보였다. 옆에는 화장실도 있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작은 축복 같았다. 잠시 카페와 화장실에서 지친 다리를 쉬었다. 산 아래로 급한 경사를 이루는 언덕 밑에 나무 한 그루가 가지가 찢어져 꺾인 채 서 있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부러진 한쪽이 본체를 향해 정갈하게 누워있는 장면은 자신의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인 듯 초연했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와 같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여정 속에서도 간간이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 발짝씩 걸어서 산 정상 가까운 곳에 다다랐다. 산행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출산의 고통만 하겠는가? 진통이 심해지는데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침대 위를 엉거주춤 기어 다니며 몸부림치던 순간의 고통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하룻밤을 꼬박 산고에 시달려 한 점의 힘도 남아있지 않아 탈진했을 때 간호사와 의사의 도움으로 첫딸을 난 순간 나는 기절했다.


쓰러지기 직전에 다다른 정상에서는 인솔자가 춥고 배고픈 우리들을 위하여 직접 죽을 끓여서 대접해 주셨다. 비바람에 시달리며 힘을 탕진한 우리에게 따뜻한 죽은 떨어진 원기를 회복하게 해 주었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차 옆에 서서 비를 맞으며 빗물과 흐르는 콧물과 함께, 소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를 섞어서 끓인 죽을 노란색 단무지와 함께 먹던 그 광경,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네 시간가량 비 오는 산등성이를 올라와 신발과 옷이 젖어 온몸에 한기가 올라왔다. 와들와들 떨며 죽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인솔자가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며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잘못하면 저체온증으로 위험할 수 있다며. 끝까지 완주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다 가지 못하고 지나쳐 온 길에 대한 미련으로 안타까웠다.

피레네 산등성이에서 비바람 속에 먹는 죽

산티아고 순례 첫 번째 여정 오레아가에서 론세스바에스로 가는 길, 비가 내리는 피레네산맥과 안개에 묻혀있던 숲, 꺾인 채 누워있던 나무, 비안개 속에 떠오른 쌍무지개, 지치고 힘든 내게 간식을 나눠주던 이, 옆에서 보살펴주던 가이드 모두 잊지 못할 것이다.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쓰러질 것처럼 힘들 때마다 첫 딸을 출산하는 순간이 떠올랐다. 비바람 몰아치는 협곡을 지날 때 올려지지 않는 다리를 들어 올려 한 발짝씩 내디딜 때 스스로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모르겠다. 온몸이 비에 젖어 저체온증 위기였을 때 옆에서 돌봐주는 이들이 함께하듯, 출산의 막바지 고개에서 모든 힘으로 나를 지켜냈던 의사와 간호사처럼 우리에겐 인생을 함께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아쉽게 피레네산맥을 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래서 더 그립고 생각날 것 같다. 모두 이룬 것보다 미완성이 더 애틋한 것은 채우지 못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살면서 도망치고 싶고 버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얼마 큼이었던가?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날들, 겉으로 웃고 속으로 울었던 시간을 아직은 괜찮다고 내게 말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난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힘들 때 포기하거나 돌아가거나 누군가에게 의탁하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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