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거리에서 나를 찾아
2024년 4월 20일 흑석동에서 마포로 이사했다. 흑석동에서 아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반 만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딸도 아들도 모두 집을 떠났다. 가족은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남편도 직장 이동으로 주거를 달리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살기를 원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나를 보고 남편은 “그건 당신 생각이야. 아이들은 돈만 보내주면 돼. 독립해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 다 큰 자식이 누가 부모하고 한집에서 살고 싶어 해?”했다. 결혼할 때까지 한집에 살다 아이들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뜻이 달랐다.
정년하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거의 10년 넘게 혼자 살던 아들과 동거를 시작했다. 아직 결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집을 떠나서 공부하던 아들을 이제라도 옆에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는 소박한 엄마 맘이었다. 처음엔 새벽에 출근하는 아들 아침 밥상 차려주는 재미가 있었다. 피곤한 아들이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는 것만 바라보아도 좋았다. 밥 먹는 아들 옆에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들 식사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아들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침구를 정리하며 기뻤다. 지쳐 들어오는 아들을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견과류를 챙겨서 아들 책상에 올려놓곤 했다. 그러면 아들은 늦은 밤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며 엄마가 챙겨 준 간식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아들 곁에서 아들을 바라만 봐도 기뻤고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새벽 출근, 새벽 퇴근하는 아들에게 밥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들과 나의 거리는 이미 아주 먼 곳까지 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함께 살았으면 자연스러웠을 소소한 일상들이 어색했다. 아들 손에 흠이 될까 설거지하겠다는 아들을 말렸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겠다는 것도 못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설거지도 순번 정해서 같이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함께 했다면 더 친밀감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소망했던 것과는 달리 동거하는 동안 아들과 나는 별로 살갑게 지내지도 못했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어렵기도 했고, 바쁜 일정 때문에 마주할 시간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1년 반이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이제 아들과 헤어져야 한다.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바람과는 달리 기억할 만한 이야기 하나 없는 무미한 시간만 보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맘에 둔 여자가 있으니 한번 만나달라고 했다. 며느리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망설였다. 그래서 먼저 딸에게 누나로서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나보다 딸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의 반응은 별로였다. 누나의 부정적 반응에도 아들의 요구는 계속됐다.
차일피일 회피하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아들이 정한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강남역에 있는 한정식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우리 아들이 원하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을 먼저 하지? 만약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하지?’
온갖 상념에 뒤채이다 약속 장소에 다다랐는데 왠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 기진맥진해졌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아들이 멋쩍은 태도로 나를 반겨 주었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쑥스럽고 어색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사춘기도 없이 지나왔던 아들은 처음으로 엄마에게 대들었다. 충격이었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대면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말문을 닫았다. 아들은 전화도 카톡도 받지도 보지도 않았고 예전에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하던 인사도 사라졌다. 내가 잠든 시간에 왔다, 잠이 깨기 전에 집을 나서기를 두서너 달이 흘렀다. 더 이상 아침 밥상을 차릴 필요도 없었고, 저녁 간식도 손대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아들은 새벽 1~2시에 들어왔다 잠깐 눈을 붙이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을 나섰다. 아들의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나는 잠든 척해야 했다. 그렇게 그림자처럼 한 동안을 견뎠다.
어느 날 아들이 선언했다. 집을 얻어 이사하겠다고. 우린 각자 살 집을 찾아서 이사했다. 아들과 헤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울컥울컥 눈물이 났다. 아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아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 같아 쓰리고 아렸다.
난 병든 병아리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맥이 없었다. 공연히 가슴이 썰렁해지면서 맥이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들과 아들이 좋아했던 그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준 것 같아 괴로웠다.
아들의 짐과 내 짐을 두 대의 차에 나눠 실었다. 아들이 먼저 딸과 함께 아들 집으로 인사도 없이 떠났다. 아들이 떠난 후 내 짐을 실은 차도 떠났다. 난 짐을 비운 집으로 들어가서 아들이 살았던 텅 빈 방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한 집에서 얼굴 보며 살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들은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홀로 아직 아들이 엄마가 필요하다고 엄마를 기다린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내 기억 속에 아들은 엄마 따라 엄마 학교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아들이다. 엄마 없이 운동회 하던 아들이고, 엄마 없이 학부모 공개 수업 시간에 오지도 않았을 엄마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으로 두리번거리며 찾았을 아들이다. 갑자기 비 내리는 날 다른 엄마들은 우산 들고 기다리는데 마중 온 엄마가 없어서 비 맞고 혼자 터덜거리며 걷는 아들이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내 자식 가슴에 수없이 상처 낸 엄마의 회한이 아들을 껴안고 있었을 뿐이다.
아들도 딸도 떠난 자리 더 이상 엄마로서 할 일이 없다. 이미 아이들은 다 자랐고 그들은 작은 옹이들을 안고 엄마 곁을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작아져서 아이가 된 무력한 나를 마주한다. 세상은 온통 알 수 없는 암호들로 가득 차 있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내 모습만 생경(生硬)하게 표류하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첫걸음을 떼며 ‘혼자서도 잘해요’를 배우며 자기 길을 찾아간 것처럼 나도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하는 아들, 딸이 떠나버린 이 미혹(迷惑)의 거리에서 모호(模糊)한 암호(暗號)들을 풀어 내며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동화 속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