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날에

부제: 청춘의 역설과 이슬 같은 삶

by 이슬

은사시나무가 봄바람에 나부끼는 4월 교정엔 이제 막 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된 신입생들의 설렘이 백조의 날갯짓처럼 부산스러웠다. 고등학교 담장을 넘어 넓은 세계에 발을 디딘 그네들은 미지의 세계에 착륙한 우주인이라도 되는 듯했다. 그네들은 목련처럼 순수했고 진달래 꽃잎처럼 청춘에 물들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첫 수업 때 자기소개를 했다.

"난 스무 살의 날에 죽고 싶어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시기에 내 삶을 마감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아~~" 한순간 교실이 술렁였다. 미래에 대한 포부와 이상을 말할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의 날에 죽고 싶다는 신입생의 페이소스(Pathos)적 첫 번째 인사에 모두 놀랐다. 졸업 후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동기가 그때 내 말이 문득문득 떠올려진다면서….


레스토랑, 디스코텍, 다방, 빵집 등등 호기심에 가득한 그네들의 탐험은 지칠 줄을 몰랐다. 삼삼오오 물고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교정에 줄지어 선 은사시나무 잎을 흔들었다.

교수님들은 그네들의 풋풋한 들뜸과 환희로 야단법석인 모습을 흐뭇하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한 맘으로 지켜보셨다. 특히 지도교수님은 천방지축인 그네들이, 마치 줄타기하는 곡예사의 묘기를 보는 듯, 아슬아슬한 전율과 불안을 느끼신다고 하셨다. 까르르 까르르 웃어 대는 어린 제자들에게 남자들을 쉽게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며 일침을 놓으시곤 하셨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 만남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스승과의 만남이다. 내 영혼을 키워낸 것은 때마다 사랑과 관심으로 살펴주신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두꺼운 안경을 쓰신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셨다. 백일 장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나를 눈여겨보시기 시작하셨다. 어느 날 발표를 하던 내게 "군계일학"이라 하셨다. 무심코 던진 그 말씀은 내 삶의 텃밭에 축복과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절망과 고통의 언덕을 넘어설 때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섰다.

신입생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나는 내내 도서관에서 학과 공부는 뒤로 하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모파상 등 문학의 세계에 매몰됐다. 인생의 비밀을 홀로 알고 있는 듯 친구도 연인도 없이 숙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시를 끄적거리면서….

1학년 가을 축제 때 "나신(裸身)들의 축제"라는 시를 발표했다. 대 강당에서 시화전을 하고 낭송도 했다. 지도 교수님은 '나신(裸身)들의 축제'에 대해 시대의 고뇌와 청춘의 열병이 느껴진다는 평을 하셨다. 그 후 지도 교수님은 나를 주목하셨다. 어느 가을날 수업 끝에 과제물을 검사하시던 교수님께서 " 넌 이슬처럼 사는구나!" 하셨다. 무엇 때문에 내게 그런 말씀을 불쑥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깡마른 데다 별로 말도 없이 조용히 있어서 그러셨을까? 살아가는 내내 교수님의 선문답 같은 그 말씀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에 침몰할 때마다 떠올랐다. 그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했다. 어떻게 살라는 말씀인가?

"넌 이슬처럼 사는구나!"라는 말씀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이슬만 먹고 사는 것처럼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는 말씀인가? 햇살이 비치면 형체를 잃어버리고 우주로 산화하듯 실체가 없다는 말씀인가? 청초하고 영롱하게 티 없이 산다는 말씀인가? ‘이슬처럼’이란 화두를 안고 세상으로 나왔다.


발령을 받고 서울, 경북, 경남 등 근무지를 옮겨 다니며 정신적 빈곤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계절 대에 편입했다. 3년여의 수강 중 난 어둠 속, 긴 터널 끝에 빛을 본 것 같은 희열을 느끼며 학문에 몰입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논문 주제 해결을 위해 홀로 전국을 누비며 연수받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시던 철학과의 한 교수님은 “넌 안나 까레리나 같다!” 툭 한마디를 던지셨다. 브론스키와의 사랑의 좌절로 선로에 몸을 던진 비극적인 여인 안나 까레리나의 모습을 내게서 보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운 여인, 외로웠던 여인, 사랑으로 불행했던 여인, 그 여인 같다는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다.

세월이 흘렀다. 스무 살의 날에 죽고 싶다던 나는 아직도 스무 살의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때 묻지 않는 스무 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스무 살의 모습으로 세상과 사람들에게 남고 싶었다. 스물이 지나 서른, 마흔도 넘고 육십 고개를 넘으면서도 난 스무 살로 죽고 싶었던 내가 그립다.


박제된 청춘인가? 스승님들이 내게 주신 첫 말씀 " 군계일학"이 내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슬만 먹고 살다 안나 까레리나처럼 사랑하고 군계일학이 돼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가고 싶어도 서러워서 못 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아직도 이슬만 먹고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안나 까레리나처럼 죽도록 사랑해 보지도 못했고, 군계일학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난 그저 스무 살로 살다 스무 살로 세상에 남고 싶다는 그 소망 하나만 이룰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것이 불가능한 소망임을 안다는 것이 내 삶의 패러독스(Paradox)이다.




스승님!

지금도 내 모교 교정엔 은사시나무가 스무 살의 청춘만 보며 화사한 4월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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