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엔테라 레이나- 에스떼야

모두 다 같은 길

by 이슬

산티아고 걷기 5일째에 접어들었다.

어제저녁 발바닥과 발가락에 물집을 터트려서

조심스럽게 양말을 신고 준비를 마친 후 알베르게를 나섰다.


다행히 걷는 것이 조금 나아진 듯도 했다.

발이 아파도 오늘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하듯

산다는 것도 살아있는 동안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 길에서 배워가고 있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거대한 물결처럼

사람들이 마치 행군하듯이 걷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상징인 여왕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례자를 위해 여왕이 세웠다는

그 다리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돌다리이다.


다리가 없었을 때는 물이 깊고

또 비가 오거나 했을 때는 더욱 위험했다고 한다.

이 여왕의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와 환대의 상징이 되었다.

여왕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수백 년 동안 먼저 이 길을 걸었던 그들의 묵묵한 기도와 염원이 느껴졌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아르가 강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강물에 비친 순례자들의 그림자가 엄숙해 보였다.


묵묵하게 아무런 말도 없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걸어가는 행렬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 같다고 생각하였다.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고 죽고 하는

생애과정은 누구나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그래서 산티아고 까미노에서는

별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상처와 분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말만 줄이고 살아도 지구상의 비극은

반 이상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리를 건너자, 길은 서서히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걷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마다 “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남긴다.


꼭 산티아고 길이 아니어도.

우리 인생길에서도 “ 부엔 까미노”이길 바란다.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밀밭이 한 폭의 거대한 그림 같았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들판의 색의 조합을 보며

호야 킨 소로야 같은

색채와 빛의 천재 화가를 탄생시킨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마네루(Maneru)를 향해 걸었다.

마네루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붉은 지붕들이 멋스러웠다.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바르가 있어 큰 위로가 된다.

산티아고 까미노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 많은 순례자들이 길을 걸어가도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길고 긴 길과 길 사이에는 마을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마네루(Maneru)도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5km나 떨어진 곳이다.

순례자들은 이런 바나 카페 등을 만나야만 화장실을 쓸 수가 있다.


산티아고 로드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네루는 에스떼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첫 번째 마을(약 5km)로 작고 소박하지만,

순례자들에겐 감미로운 첫 휴식처다.


시라우키(Cirauqui)는 중세의 좁고 구불구불한 돌길과

오르막이 이어지는 마을 길로 8km가량이다.

이 길은 다소 힘겹게 걸었다.

하지만 그 길은 마치 중세 시대로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음습하고 우울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대 로마 도로의 흔적이 남아있어 깊은 감흥을 받았다.


시라우키 마을을 지나 로르카(Lorca)에 도착했다.

로르카는 바르와 쉼터가 있었다.

이곳에서 커피 한잔과 빵을 먹고 지친 발걸음을 쉬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또 하나의

기쁨이 카페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행 중 그래도 소통이 되는 이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혼자라는 것도 약점이 되는 것 같았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으면 정서적 안정도 되고 서로 의지가 되기도 한다.

정보와 능력과 다수의 편은 어디에서나 권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불안이 두 가지이다.

낯 선 장소라는 것, 처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리 준비를 하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요즘은 번역기가 있어 간단한 소통은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신발도 벗고 발도 확인했다.

물집이 터지고 진물이 흐르는 발로

이렇게 먼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쉽게 생각하고 섣부르게 길을 떠나온

나 자신의 무지함에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먼저 떠난 남편이 왜 내게 이 길을 가게 했는지 떠올렸다.

남편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리고 남편은 별다른 일없이 잘 걷고 있겠지. 문득 생각이 났다.


로르카를 거쳐 에스떼야 직전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에 다다랐다.

노란 유채꽃과 푸른 초원 높고 파란 하늘

마치 천상의 아리아가 들리는 듯 아름다운 길이었다.


오던 길엔 잘 가꾸어진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사잇길도 걸었다.

아픈 발을 달래가면서 지나온 길이기에 더욱 뜻이 깊었다.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벌판은 마치 황금의 바다처럼 황홀했다.

에스떼야에 오는 길을 달고, 쓰고, 맵고, 짰다.




스페인은 태양의 나라이기도하다.

떠오르는 태양은 언제나 감동이다.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면

천지창조의 현장을 보는 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스페인 로드의 가장 큰 축복은

언제나 태양을 뒤고 하고 걷는다는 것이다.

태양을 맞바라보며 걸어야 한다면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걸었노라. 아픈 발로

그리고 닿았노라

황금빛 축복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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