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말없이 담담하게 지켜가는 삶
“코로 숨을 쉬셔야 해요.”
다급하게 손을 들고 의사의 치료를 일시 중단시킨
내게 치위생사가 지시했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어금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젯밤엔 계속 아파서 손가락으로 어금니를 쥐고 흔들어 보면서
당장 뽑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다.
치과 가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댔는데
지난밤의 고통을 생각하니 더는 미룰 수 없어 치과에 갔다.
십여 년 전부터 대치동에 다니던 치과가 있었지만,
충치 치료가 딱히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
귀찮기도 해서 사는 곳에 가까운 치과에 갔다.
치아가 오복 중에 하나라는 말을 예전부터 어른들에게 들었지만
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치아 관리에 소홀했다.
원래 타고난 치아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충치 하나 없는 건강한 치아와
고른 치열을 지니고 있었다.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 동료 선생님이 건치 모델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남편과 떨어져 살았던 나날들도 많았고 한번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문화와 환경이 다른 곳에 적응하느라 애썼다.
3, 4년 단위로 도간 이동하다 보니 이동한 곳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익히고 맞춰야 했다.
그들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관계 방식과 틀이 있었다.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동문이 있고 동향인 친구들을 갖고 있었다.
학연, 지연으로 끈끈하게 엮어진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기는 만만치 않았다.
적응할 만하면 전출하고 또 적응할 만하면 전출해야 했던
나의 여정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4월 같았다.
어둠 속에 빛이 비치는 듯
그렇게 서른셋에 전남 광양이라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현직에 입문한 지 십여 년이 되었고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난생처음으로 광주교육대학을 찾아
12월 말인지, 1월 초 인지 겨울 고속도로를 달렸다.
당시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도로표시를 보면서
모르면 차를 세우고 물어물어 광주교육대학교를 찾아갔다.
교육 대학들이 많았지만,
계절학기 과정이 남아있는 곳은 광주교육대학이 유일했다.
결혼하기 전에 서울 교육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결혼과 함께 중단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로부터 대학 과정 3년, 전문상담교사 양성 과정 1년,
아동 상담심리학과 대학원 과정 3년 등
오랜 기간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했다.
대학원 과정 3년 만에 논문까지 완성하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였다.
7년간 학문에 몰입하고 나니 다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학업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비치는 듯
경이롭고 황홀한 시간들이었다.
한 친구는 박사를 해서 연구사나 장학사를 하면
더 빨리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충고했지만,
나는 대학원 논문발표가 끝나는 그해부터
승진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해 현장 연구논문,
부장 경력 쌓기, 연구학교 근무 등등의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수업 연구대회를 경남 하동에서 한번
그리고 전남에서 3번 출전하여
수업 연구대회 1등 상을 받아 수업 명인이 되었다.
그 후 수업 선도 교사, 특별연구 교사 활동을 하면서
전남 도내에 근무하는 모든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며 컨설팅했다.
방학 동안에는 전남교육연수원, 광주교대 부설 교사
직무연수 과정 강사 등의 활동을 했다.
그리고 광주교육대학 방과 후 과정
미술치료에 대해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 치아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승진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들면서 2004년경 마음을 다지며 치료를 시작했다.
왼쪽 어금니 충치 치료를 6월경에 시작했다.
일차 치료를 마치고 2차 진료를 가야 하는데
진료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다음에 다음에 하다 여름 방학이 되었다.
여름 방학 기간에 15박 16일의 유공 교원 유럽 연수가 잡혀있었다.
유럽 연수를 다녀와서도 밀려드는 업무에 지쳤고
세 아이 건사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미루고 미루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때 왼쪽 어금니 두 개를 발치하고 말았다.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때 치아의 소중함을 조금만 더 깊이 인식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명을 다하는 삶 후속 편은 금요일 발행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