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닳아서 빛이 나는 삶
그러고도 바쁜 일정들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연민과 함께
보호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듯했다.
어떤 교감 선생님은 교실을 돌아보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교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나를 보며 살며시 창문을 열어주시기도 했고
추운 겨울엔 히터를 틀어 주기도 하셨다.
"OOO 선생님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던
어느 교장선생님의 애정 어린 찬사,
이제부터 승진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다는 내 말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장학사님들
그분들은 모두 나를 이끌어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전문직 시험에 도전했다.
온 영혼을 끌어모아 매진하는 과정에서 잠도 잘 수 없었다.
학교 근무하고, 아이들 식사 준비해 주고, 공부하고, 해야 할 내용은 너무 많았다.
나의 나날은 생각만 해도 신기할 만큼
꽉 짜인 일정으로 숨 쉴 틈이 없다는 표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더더욱 높아졌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강박적인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극도의 긴장과 강박은 약도 소용이 없을 만큼
나의 삶은 긴박한 절박함이 몸과 마음을 온통 지배하고 흔들었다.
그렇게 소망해서 영혼까지 털어서 올인했던 그해 전문직 시험에 패배했다.
실망과 좌절, 박탈감, 그리고 탈진으로 쓰러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끈 떨어진 연처럼 부유했다.
내 삶이 닳고 닳아서 없어지는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마모될 대로 마모되어 버렸고 일어서기 싫었다.
“뿌리에 금이 가서 빼고 임플란트 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한사코 뿌리쳤다.
치아를 살려 쓸 수 있을 때까지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치아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아는
통찰에서 얻은 결론이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
의사와 치위생사는 사진을 찍고 치료 시 통증을 우려해 마취 주사까지 놓았다.
오른쪽 어금니 쪽 주변에 여러 번 찔러대며 주사를 놓을 때마다
온몸이 긴장되어 주먹을 꼭 쥐며 덜덜 떨었다.
마취 주사를 맞으니 졸리는 듯도 하고 기진맥진하였다.
그런 나를 보고 치위생사가 프런트에 나가서 좀 쉬다 들어오라고 했다.
어질어질한 몸을 이끌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 소파에 잠시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시 치료실로 들어갔다.
“입을 좀 더 크게 벌리세요. 턱을 아래로 내리고 코로 숨을 쉬셔야 합니다.”
치위생사의 주의 사항이 끝나자 의사는 기구를 들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물이 자꾸만 목으로 넘어갔다.
숨을 쉬기가 어렵고 무서워서 왼쪽 손을 들어 치료를 멈추게 했다.
잠시 후 다시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아를 갈아내는 독특한 소리에 몸이 점점 굳어졌다.
치료 중 뿌리는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어렵게 치료가 끝났다.
건강하고 보기에도 좋았던 치아가 충치가 되어 마모되어 간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참 애썼다. 고맙다.'며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위해 조금씩 닳아서 없어지는
치아를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했다.
그 치아를 보며, 정년 할 때까지 도전하고 도전하면서 조금씩 낡고 허름해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 와 되돌아보니 그때가 그립다.
병원 갈 틈이 없어, 치아를 잃어버릴 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아낸,
내가 생각하면 참 대견하다.
살아오는 동안 상처도 많아 받았고
숱한 날들 괴로움에 뜬눈으로 잠을 설치며 뒤채이기도 했다.
상처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흠 없이 피는 꽃이 또한 어디 있으랴!
오랜 기간 씹고 뜯고 잘게 음식들을 부시는 일을 하다 상처 입은
치아를 치료하면서 살아왔던 날들을 되돌아보았다.
나를 위해 헌신해 준,
이제는 세월의 흔적에 쓰러지는 누각이 된 닳고 금이 간 내 치아처럼,
내게 주어진 소명을 위해 닳아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빛이 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이 오면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작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