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라는 이름으로

부제: 어미를 울리고 떠난 풍경소리

by 이슬

아들이 왔다. 아들이 왔다가 갔다.

새벽에 잠 깨어 습관처럼 카톡을 봤다.

'원진(가명)이 부친상이 있어 광양에 잠깐 왔다가요.'

카톡이 온 시간은 열두 시 오십오 분이었고, 내가 확인한 시간은 네 시 사십오 분이었다.

“뭐라고? 원진이 아빠가 돌아가셨어?”

“네, 새벽에 집에 들어갔었는데 주무시는 것 같아서 한숨 자고 나왔어요.”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자식을 두고 가는 아버지의 맘이 어떠했을까?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남겨진 어미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세상에 많은 인연이 있지만 부모 자식의 인연만큼 깊은 만남이 또 있을까?

어미가 잠이 깰까 봐 소리도 없이 왔다 자고 갔다는 아들 말이 섭섭하다기보다 서글펐다.

같은 서울에 있어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다.

워낙 바쁜 아들이어서 통화도 어려운 처지이다.

아마도 아들은 친구 부친상 부고를 받고도 늦은 시간에 왔다가

이른 새벽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들·딸을 생각할 때면 항상 목마르다.

어렸을 때는 사느라 바빠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성장하여 어미 품을 떠난 뒤엔 항시 소금물을 마신 듯 갈증이 난다.



봐도 또 봐도 그저 좋은 아들·딸이다.

딸은 애잔하여 마음이 가고 아들은 참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난 아들, 딸에게 항상 “고맙다. 미안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들이 행복한지 기쁜지 태어난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기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항상 가지며 산다.

세상에 모든 어미·아비가 그러하듯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이다.

결혼하고 멋모르고 딸을 낳았고 삼 년쯤 지났을 때 아이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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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가 임신을 하면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눈치를 많이 준다.

동료들은 업무 부담 때문에 싫어하고 운영진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교사들은 임신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다가 외적으로 티가 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두곤 한다.


그러다가 유산을 하거나 사산하는 여교사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는 상태였다.


임신인가 싶은 시기에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났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유산할 확률이 있으니 중절 수술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사의 말대로 수술했지만 나날이 시름시름 앓았고 몸은 더욱 아팠다.

결근도 조퇴도 신청할 주변머리도 없어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러기를 한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여름 방학을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교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동료들과 생활기록부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온몸에 한기가 들고 아랫배가 불러오는 듯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꼭 곡예사가 줄을 타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교무실은 난리가 났고

119구급차에 실려 포항성모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져 생명이 위독했다는 담당 의사 말씀이었다.


응급 수술이어서 수술 자국이 흉하게 남았다.

의사는 떼어낸 나팔관을 남편과 내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어떤 모양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끔찍한 기억만 남아있다.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도 자궁 외 임신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신랑이 장남이어서 큰 애가 세 살이 되어가니 알게 모르게 아들 낳으라는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또다시 자궁 외 임신할 확률이 높다는 말에 딸 하나만 키울 생각이었다.


3년쯤 지났을 때 지금 아들이 찾아왔다.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뜻밖에 찾아온 아들이 사실 기뻐해야 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전근 후 2년 만에

남편은 나와 딸만 남겨두고 광양으로 발령을 받고 떠났다.

낯선 포항에 두 돌 지난 딸과 아내를 찾아 남편은 불안한 장거리 통근을 주별로 해야 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광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유리창엔 비가’라는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슬펐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그런 상황에 찾아온 아들을 출산하고 양육할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었다.


그렇게 우리 아들이 내게 왔다.

어려운 길을 따라왔고,

직장 다니는 엄마 곁에서 제대로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일 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아들을 키웠다.

만 1세가 된 아들을 데리고 포항으로 돌아와 복직했고 아들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오늘 큰일 날 뻔했다며 들려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우미가 곰국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이제 두 돌도 안 된 아들을 재워 두고 외출했다고 한다.

외출이 길어져서 곰국이 타 연기로 온 집안이 가득 차니

어린 아들이 창가에 붙어 서서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생명까지 위협당하는 상황에 놓였던 아들이,

그 어린 아들이 그래도 창문을 열고 창가에 서서 소리쳐 울었다니

기특하고 고맙고 미안했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고 눈물이 난다.

이일뿐이었겠는가? 키우면서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셀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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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항상 아들·딸에게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고도 당당하고 믿음직하게 자란 아들·딸이 참 자랑스럽다.

언제나 엄마를 위해 주는 아들·딸!

서로 알뜰하게 보살펴주는 마음 씀이 못난 어미는 황송할 뿐이다.


늦은 밤에 찾아와 어미 깰까 봐 소리도 없이 잠을 자고

어두운 새벽길을 나선 아들은 어미를 울리고 떠난 풍경소리다.

결혼도 시키지 못한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비 맘은 어떠했을까?

이 새벽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상을 치르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그 어머니의 맘이 내 일인 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모 자식의 인연이란 것은 얼마나 놀라운 신의 섭리인가?

신을 모든 곳에 둘 수 없어 어머니가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어미라는 이름으로,

고통과 슬픔의 순간들도 기꺼이 감수하며 세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세상, 모든 어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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