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치명적인 결핍
난민 숙소 같은 알베르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어제 순례자 중 몇몇이 술을 먹고
잠을 잘 때 뿜어내는 역한 냄새와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여행의 묘미 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아 속상했다.
술 먹은 이들이 숨을 쉴 때마다 토해내는 숨에서 견딜 수 없는 악취가 나서
나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토가 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숨을 내가 받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역했다.
밤새도록 잠들지 못한 채 방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 새벽을 맞이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들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내가 이해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로스 아르꼬스에서 로그로뇨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었다.
오르내림이 있는 길보다 지루한 느낌이 들었고 더 지치는 듯했다.
로그로뇨로 가는 길은 마을 이름이 예뻤다.
첫 번째 마을은 산솔 (Sansol) - 토레스 델 리오 (Torres del Río)-
비아나 (Viana) - 로그로뇨 (Logroño)이다.
초반에 로그로뇨에서
산솔로 가는 길은 광활한 포도밭이 펼쳐진 평지가 이었졌다.
시간이 지나자 햇살이 뜨거워졌고
그늘이 없어 힘들고 지쳤다.
어디나 쉴 곳을 찾아보았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길 중에서 가장 걷기 힘든 길이 나타났다.
토레스 델 리오에서 비아나까지의 길이다.
그 길은 자갈길과 먼지 많은 오솔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 길이다.
'다리를 부러뜨리는 길'이라 불렸다고 한다.
구간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는 지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구간이어서
집중에서 걷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제법 복잡한 도시로 접어들었다.
시멘트 길이 나타났고 학교가 보였다. 학교 옆을 지나가는데
선생님을 따라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은 나를 보며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우호적인 태도로 나를 반겨 주었다. 참 반가웠다.
순간 아이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 소풍, 체험학습을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과 활기찬 몸짓들
운동장에 흩어져 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나를 향해 달려오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하면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벅찬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순간 너무 감동해서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던 날들
그날들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참 아름답고 소중한 일을 하며 살았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에 잠시 멈칫했다.
학교 교정이 훤히 보였는데,
아이들은 큰 애 작은 애 구분 없이 축구를 하며 뛰어놀기도 하고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즐겁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밝고 건강해 보였다.
학교 옆을 지나니 양 옆으로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물결을 지며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부드럽게 몸을 허공에 흔들면서 물결치는 모습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흐느적이는 무희처럼 감미로웠다.
잎새들이 바람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듯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마가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먼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배전에 휘날리는 깃발 같기도 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 쪼이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제법 큰 에브로 강이 나왔다.
에브로 강을 옆으로 푸른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쌌다.
하늘을 담은 강은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로스 아르꼬스에서 로그로 료로 가는 길에는
포도밭이 넓게 펼쳐졌다.
다른 곳 보다 다소 건조한 듯한 느낌이었다.
길고 긴 길을 산과 들, 나무, 강, 바람
그리고 지나는 여행객들과 조우하며 걸었다.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들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차 올라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될 것이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는 어떤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알베르게에서 취객들 때문에 잠들지 못했던 기억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걸었다.
다시 목적지에 도착하니 알베르게에서의 생활이 걱정이 되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 미비한 것은 치명적인 결핍이다.
걷는 과정에서 힘듦 보다도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불안하다는 점이
이 산티아고 까미노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