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노 -나헤라 29.6km

부제: 나를 알아가는 과정

by 이슬

이 알베르게는 포트가 제공되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재료로 나름대로 아침을 해결해야 한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 까지는 거의 30Km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로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침을 먹으려고 포트를 빌려 물을 끓였다.

1인용 포트였는데 끓은 물을 보온병에 담으려고 입구를 여는 순간

뜨거운 김이 얼굴에 분사되어 화상을 입었다.


화장실로 뛰어가서 찬 물에 얼굴을 계속 담갔다.

급하게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응급처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

출발준비를 하고 벌어진 상황이어서 옷이 모두 젖어 버렸다.


인솔 팀장은 사태의 심각성보다는 전체 인솔에만 신경을 쓰는 듯해서 섭섭했다.

응급 호출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다는 내색을 했다.

전체 진행이 중요하기는 해도 이런 상황에서 사고 난 사람에게

더 신경 쓰고 배려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출발하고 나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가까운 국립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른 곳이 아닌 얼굴이어서 몹시 불안했다.

평생 화상의 흔적을 얼굴에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화끈거림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진료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다는 생각을 했다.

일러스트 윤세한


실제 시간의 길이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키가 크고 다소 마른 듯한 젊은 스페인 남자 의사가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순간 노출에다 응급처치를 잘한 결과 얼굴엔 별 이상이 없다고 했고

먹는 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현지 가이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다.

일행 중에 한 분이 끝까지 나를 돌봐 주었다.

자기가 옆에 있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그분의 말이 위로가 많이 됐다.


갑자기 당한 일로 당황한 나를 옆에서 계속 챙겨 주고 위로해 주고

도와준 그분이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모두 자기 짐 챙기고 떠날 준비 하느라 바쁜 중에

세수 대야에 차가운 물로 계속 바꿔주며 옆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옆에 있어 주겠다고 말하는 그분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었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낯설고 갑자기 홀로 고아가 된 듯한 느낌, 왕따가 된 느낌이었다.


나보다 먼저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럴 때 남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매일매일 인솔자를 통해 남편은 나의 안부를 물었다.

준비 없이 온 산티아고! 남편을 슬프게 하고 온 산티아고에서 어려운 일들이 연속발생했다.


산티아고 까미노는 홀로 걸어야 제 맛이라고 했다.

여행사를 통해서 왔기 때문에 사실은 단체 순례인 샘이다.

더러는 서너 명이 함께 온 팀도 있고 혼자 와서 이곳에서 짝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맘에 맡는 짝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 결정권을 독점하는 순례자가 생겼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예전에 한번 온 적이 있다는 이유였다.

산티아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규칙이나 생활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자리 배정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출발 시간, 잠자는 시간 등도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게 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갈등이나 다투기 싫은 마음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이들에게 동조하였다.


처음으로 이 길을 온 사람들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힘이다. 다시 한번 아무런 준비 없이 출발한 나 자신의 무모함을 되돌아봤다.


사람과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나는 적응력이 높지 못했다.

이방인 같은 느낌, 겉도는 느낌, 이런 느낌 때문에 사는 동안 내내 외롭고 고독했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도 타인이 내게 다가오는 것도

나는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제나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일러스트 윤세한


돌발적인 사고로 아침부터 혼란하고 불안한 하루였다.

어려움에 쳐하니 사람의 본모습이 보였다.

끝까지 함께해 주겠다는 분의 고귀한 마음과 도와주셨던 것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각박해졌다고 하더라도 힘든 일을 당한 이웃을 잊지 않고 힘이 되어주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은 살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덕분에 오늘 여정은 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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