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삶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은
에스떼야(Estella)에서 로스 아르코스(Los Arcos)까지의 여정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중에서도
자연의 풍경과 문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구간이라고 한다.
이 구간은 약 21km 정도로, 하루에 걷기 적당한 거리였다.
어제 머물렀던 에스떼야 중심가에는
공방형 소품점,
도자기, 나무 조각, 손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이 등
장식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씻고, 짐정리한 뒤 숙소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숙소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갈 수 없었다.
여행하는 내내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나의 한계였다.
남편과 함께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이럴 때마다 몰려들었다.
로스 아르코스 이라체 가는 길에는
와인 샘과 소형 기념품점이 있다고 한다.
와인의 주 산지이다 보니
와인 관련 소품이나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수공예품 점이 이라 해서 기대하고 갔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상쾌했다.
스페인의 4~5월 날씨는 대체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크고 대체로 맑고 쾌청한 날이 많다.
그래서 길을 나설 때 선글라스, 모자, 긴 옷 등등을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걷다 보니 경사가 그리 높지 않은 오르막 길을 나타났다. 헉헉 거리며 발바닥의 통증을 느끼며 걸었다.
길 오른편에 궁금했던 수제장식품 공방이 나타났다.
공방표시가 된 문을 들어서니 입구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공방 안에 발을 들였다. 다양한 장신구들이 걸려 있었다.
주물로 만들어진 장식품들의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에 놀랐다.
스페인 장인들의 솜씨는 세계적이다.
시계를 비롯한 타일 등등 세계적 수준의 명품들이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곳 공방 주인의 솜씨도매우 수준이 높은 듯이 여겨졌다.
여러 가지 장식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전등부터 벽 장식용품 등, 재료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활용하여 제작하였다.
각 국 나라 여행객들이 모두 들려서
작품들을 보면서 깊이 빠져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섬세하고 독특한 장식품들은 수제작 했다는 점에서
희귀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고 있어서 하나쯤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공방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낯익은 풍경들이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수제 장식품 집을 나와 한참 걸어서 올라가니
포도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길을 돌아 언덕 같은 등성이를 올라가다 보니
왼쪽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와인 공장이라고 했다.
이라체 수도원 앞의 와인 샘(Fuente del Vino)은
수도꼭지에서 레드 와인이 나오는 명소이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을 제공하는 특별한 장소다.
왼쪽 수도꼭지에서는 와인, 오른쪽에서는 물이 나온다
와인을 시식하는 곳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줄을 서서 와인을 받고 있었다.
같이 온 순례객들은 와인을 보자 반색을 했다.
미리 준비해 온 빈 병에 와인을 가득 담아서 더러 마시고 더러는 가지고 갔다.
술을 잘하지 못해서 와인 담을 용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와인샘에 막상 도착해서 와인 마시는 이들을 보니
아도 이곳 와인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안경집을 꺼내서 거기에 와인을 조금 받아마셨다.
맛을 분별할 수도 없었지만 와인의 독특한 향과 맛이 나를 설레게 했다.
와인샘을 지나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수도원 주변은
보데가스 이라체(Bodegas Irache)라는 와이너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와이너리의 깊고 은밀한 고독이 나를 유혹했고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연초록으로 물들어 넓게 펼쳐진 포도밭 사이를 지났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포도잎이 이슬을 머금고 청량한 하늘 아래 눈부셨다.
들판에는 야생화가 손을 흔들며 우리는 맞아주고 보내주었다.
아! 깊고도 아름다운 이 매혹의 설렘과 삶의 정수가 담긴 이곳을 지난 나그네의
그리움을 이들은 알 길이 있을까?
달콤한 환상에 도취하였다.
여행이라는 하는 것은 나 아닌 나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여정인 것 같다.
걸어도 걸어도 끝 날 것 같지 않는 산티아고 로드는 때로 지치기도 하지만
그냥 걷다 보면 결국은 목적지에 닿게 된다.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어 낼 수 있어 기뻤다.
와인의 본고장에 있는 색다른 와인샘에서 와인을 접해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로스 아르코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출발했던 일행은 벌써 저만큼 멀어져 갔다.
홀로 걸을 때 다소 소외감,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같이 걸으면 상대방을 신경 써야 해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다.
우린 끊임없이 누군가와 동행하기를 꿈꾼다.
마음을 나누며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만난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와인의 화려하고 감미로운 맛이 혀 끝에 남아 걷는 동안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로스아르코스 가는 길
살아간다는 것도 이와 같은 것 같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의 시간들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친다. 깊고 풍미 있는 와인이 탄생하기까지도.
그 긴 시간들의 노고와 인내가 없다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길이다.
인내와 지혜를 통해 숙성되어 깊고 향이 난 포도주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여 맛과 풍미를 잃어버린 알코올이 되기도 한다.
몇백 년 동안 어두운 와인실에서 지금도 태어나기를 꿈꾸는 많은 와인들이 있다고 한다.
쉽게 얼굴을 내밀고 세상에 소리치기보다는
익을 대로 익어서 비로소 완숙되었을 때 그 자체로 이름이 되었을 때
참된 자신으로 완성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고유한 향과 빛깔로 빛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서 스스로 삶의 결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