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

부제: 헌신과 희생의 대가로 얻어진 이름

by 이슬

“ 엄마! 내가 누구야?” “늙은 여자!” 폭소가 터졌다.

대전에 살던 언니가 서울로 이사를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난 언니에게서는

노쇠한 세월이 허리를 굽히고 더듬어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많이 지쳤나 보다. 그렇게 꽃 같던 언니가 이렇게 되었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언니에게 심리적 부채를 안고 있는 나는,

언니의 백발에서 피부가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백반증을 발견하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피부과를 경영하는 큰아들을 가까운 곳에 있으면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소망 하나 안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거리가 가깝다고 마음도 가까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은 진료에, 세미나에 지역행사 참여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혹시나 하고 아들 곁으로 찾아간 언니의 그 소박한 소망은 이루지 못했던 듯싶다.

그 깊은 속 사정이야 어찌 알 수 있을까만 미루어 짐작이 갈 뿐이다.

그리고 언니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채울 수 없는 애달픔을 간직한 채….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 말은 진실인 듯하다.

형부의 외도는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언니가 삼십 대 후반이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언니는 빠듯한 월급으로 두 아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허리 펼 날 없이 나날을 전쟁 치르듯 살아냈다.

몸 빼 바지, 부스스한 머리, 언제나 젖은 손, 바쁜 걸음,

아내와 엄마가 된 후의 언니의 모습이다.



“언니! 머리도 좀 하고 그래. 그러다 형부 바람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바람은?” 가끔 형부의 수상쩍은 행동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항변하는 언니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갖고 싶어 하는 언니를

굳이 흔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물러서고는 했다.

수양버들 같았던 언니의 여리고 곱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질기고 투박해지는 언니는 예전의 모습을 잃고 점점 낯설어졌다.



언니와 형부는 한국전기통신 공사 전신인 시외 전화국에서 근무했다.

형부는 시외전화국 시스템 설치 분야에서 실무 능력이 뛰어났고,

당시 청와대에 파견될 만큼 우수한 인재였다.

그 후 시외 전화국이 한국통신공사가 되면서

전국 주요한 곳에 기지국이 생겼다.

형부는 원주 기지국에 파견 근무를 했고, 언니의 신혼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첫아들을 출산하고 임신 중독증에 걸렸던 언니는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십 대 중후반에 형부는 한국통신공사를 나와

직장인들의 재취업 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나름 승승장구하던 형부의 사업이 제2 IMF를 맞아 부도를 맞으며

언니의 삶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파산하기 전 의대 4학년인 아들을 결혼시킨 것은 최대의 실책이었다.

결혼 상대는 공부밖에 모르던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첫 번째 미팅에서 만난 한 살 더 많은 아이였다.

고급 차를 끌고 다니는 데다 인물도 훤칠한 의대생을

어느 여학생인들 좋아하지 않았을까?

공부밖에 모르는 숙맥인 아들,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는 철없는 시기였다.



아들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는 대학을 먼저 졸업했다.

그 집안에서는 마땅한 직업도 없고, 직업을 구할 능력도 없었던 상황에서

의대생 부잣집 아들은 붙잡고 싶은 사윗감이었다.

스물네 살 밖에 안된 아들의 결혼을 언니는 반대했다.

형부의 강력한 의지와 여자 쪽 집안의 바람 때문에 강행됐다.

처가가 빈손인 직업도 없는 며느리를, 아들 학업 중에 맞이한 후,

부도를 맞은 형부는 중국으로 도피했다.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과 의대 다니던 아들에 뜬금없는 빈손 며느리,

그리고 막내아들은 언니의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다.

며느리는 결혼 후에도 자신의 위치가 불안했던지 서둘러 임신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쌍둥이를 출산했다.

한술 더 떠 손주 키운다는 명목으로 사부인까지 아들 등에 얹히게 되었다.

아직 전문의도 되지 않은 아들 등에 얹힌 무거운 짐을 보며

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깊어졌다.

두 아들 학자금에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했던 언니가 볼 때,

며느리의 임신과 출산은, 아들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고 생각한 듯했다.

아들만 바라보는 무대책인 며느리와 사부인이 곱다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251017_093728[1].heic 억새꽃 바람에 날리 듯


아들이 전문의를 땄고 어렵게 아들을 개원시켰다.

그 후 아들은 언니 생활비를 좀 보내주기는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수시로 어렵다며 언니에게 손을 내밀기 일쑤였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개업할 때도

며느리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한 것이 없는데 당당했다. 너무나.

그 며느리는 남편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오 분 단위로 전화를 해댔고 하루 종일 징징거리며 쫓아다녔다.

자기 어린 아들은 어린이집으로 특수학교로 돌리면서

오직 남편만 쫒는 며느리의 행태를 언니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병원에 진을 치고 앉아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했다.

모든 재정권을 거머쥐고 아무도 아들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방어막을 구축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제대로 관리를 못 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병원 경영이 어렵다며

하소연하기 일쑤라니 이해할 수 없는 아들과 며느리다.


그래서 언니와 아들 사이는 멀고 먼 사이,

타인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흔히들 하는 말로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네 아들,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못 난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듯했다.

아들을 갖은 고생 끝에 의사 만들고 병원까지 개원시켜 주었건만

아들과 며느리의 태도는 날로 차갑게 변해갔다.

빈손 며느리의 기세는 날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며느리의 엄마는 이 딸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번번이 고단수인 며느리에게 당하며 사는 언니를 곁에서 지켜보기 맘이 힘들었다.


추석이 지나고 며칠이 흘렀다.

요양원에 들어간 엄마를 보러 가자고 했다.

참 오랜만에 언니를 만났다.

항상 신세 한탄만 늘어놓는 언니를 만나는 것이 괴로웠다.

살아온 삶이 그러하니 듣다가도 항상 같은 레페토리(Repertory)는

고장 난 카세트처럼 무한 반복이어서 듣다 머리에 쥐가 날듯했다.

한동안 보지 못한 언니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온통 백발에다 피부도 거칠고 잡티로 뒤덮여 있었다.

아들이 피부과 의사임에도 자기 엄마 피부관리도 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언니! 아들 뒀다 뭐 하려고 그래! 아들이 피부과 의산데 얼굴이 이게 뭐야!”

“가지도 오지도 않아.”하는 말에 더 이상 내색하지 않았다.


올케 차를 타고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면회를 신청하고 기다렸다.

조금 있자 엄마가 꽃분홍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우리들을 보더니 “누구여!” 하며 반가운 얼굴로 우리들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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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누구야?”

언니가 반가운 마음에 엄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현재를 잃어버리고 과거로 걸어가는 엄마가 언니를 보고

“늙은 여자!” 했다.

순간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참 눈물 나게 웃긴 장면이었다.

나 보러는 “아니! 니가 둘째냐 셋째냐.” 하신다.


엄마 눈에 ‘늙은 여자’가 되어 버린 언니와

이제 백세가 다 된 엄마는 엄마와 딸이라기보다 친구 같았다.

엄마보다 더 빨리 세월을 먹어버린 언니가 그 말을 듣고도 웃었다.

엄마는 올케 집에 있을 때 보다 더 건강해지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피골이 상접했던 엄마 얼굴에 살이 오르고

주저앉아 일어서지도 못했던 엄마가 보조기를 밀며 걸어 다녔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엄마를 보자 올케가 집에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못 된 시누 맘이 슬그머니 치올랐다.


백발이 된 딸이 엄마보고 누구냐고 묻자

“늙은 여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언니는

“그래, 엄마! 나도 이제 늙었어.” 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와 이제 백발이 된 칠순을 넘긴 딸이 주고받는 대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햇살에 부딪쳐 눈부신 목련꽃 같았던 언니가

늙은 여자가 되어 버린 까닭을 언니의 삶을 되돌아보며 생각해 보았다.


맏딸이어서 친정에서는, 서모 밑의 맏며느리여서 시댁에서는

희생과 헌신뿐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아들 셋을 낳아 키워내고도

언니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하염없이 세월에 밀려가고 있다.

한 여자의 일생이 하나씩 문을 닫으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비단 이런 일들이 언니뿐이겠는가?

우리들 모두도 그렇게 나뭇잎이 물들어 가듯 세월에 물들고 낡아서 허물어지고 있다.


헌신과 희생의 대가로 얻어진

‘늙은 여자’란 호명은

삶의 훈장이기도 하지만 삶의 낙인이기도 하다.

한 여자의 일생이 다다른 최종의 기착지인 셈이다.

잘 살아냈다는 표징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늙은 여자’라는

엄마의 대답은 언니에겐 어떤 느낌이었을까?

언니가 백발로 웃는다.

어쩜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만 지어내는 웃음인지도 모른다.

더 세월이 흐르면

‘늙은 여자’라는 말에

우리들 모두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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