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배경이 되어

by 이슬


부산지역 고등학교 학생 3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들은 친구 사이인 듯하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아파트 정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문 한 귀퉁이를 차지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누가 얼마 큼이나 관심을 가질까?

마치 풀잎에 스쳐가는 바람소리처럼 일순간 뇌리를 스치고 갈 뿐이다.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 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엄마는 아빠는 선생님은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고 한들

그들의 선택을 막을 수나 있었을지 …. 끝없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의 꽃 같은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마음을 누군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무 살의 날에 죽고 싶었던

나도 육십을 넘기고도 이렇게 버젓이 살고 있는데….

삶이 꽃같이 별같이 아름답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다.

20241204_172653[1].heic 월드컵 공원 저녁노을이 질 때


누구도 삶에서 비껴갈 수 없는 난제들 앞에

때로 넘어지고 꺾여서 시체처럼 널브러지기도 한다.

죽기보다도 싫은 모욕 앞에 무릎 꿇었던 순간을 버티고 일어서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받아 들을 수 있어야 비로소 살 수 있다.



아침에 기사를 보고 마음이 착잡하였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한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어쩜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겠다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들 곁에 있었던 이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다.


내게는 중학교 때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그 애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우리들은 병문안을 갔다.

아파서 누워있는 그 애가 참 부러웠다.

두세 달이 지난 뒤 그 애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불쑥 자라 성숙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수 김수희를 닮았던 그 애는 공부도 잘했고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였던 우리들은 은근히

그 애를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곤 했다.

애교가 넘치는 그 애의 귀여운 모습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애들이 없었다.


20170120_095622[1].jpg 크로아티아의 겨울 산

우린 둘 다 교육대학교를 다녔고

내 친구는 흑석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나는 목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우린 매우 가까워졌다.

매력적인 그녀는 학교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우수한 교사였다.

학교 수업연구 발표를 해서 실력을 검증받았고,

다른 분야로도 점점 자신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녀는 사교적인 데다 유능했다.


그 친구는 대학생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명문대를 다녔던 그 남자는 내 친구를 매우 사랑했다.

그녀도 그를 사랑했지만 홀어머니에 장남이었던

그를 친정 엄마가 결사반대 했다.


결국 그녀는 스물여섯이 되는 해에 그렇게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를

눈물로 보내고 오랫동안 그녀를 짝사랑했던 친구 오빠와 결혼을 했다.

결혼하기 전 날 그 애를 사랑했던 남자는 남편이 되려는 남자에게

이 여자는 내 여자라고 절대로 보내 줄 수 없다고 그렇게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남편이 되려는 남자는 내 친구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청춘이 그리움과 회한을 안을 채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생활에 적응하느라 너무나 힘들어서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참이었다.

20170127_092942[1].jpg 비주얼 성서(Biblia Pauperum) 중세 성서를 가르치던 그림 성서

3 월지나 4월쯤 되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시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집에서도 친구라고 하면서 어디 장례식장이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알 길이 없었고, 결혼 초에 적응이 어렵던 시기였기 때문에 흘려들었다.

그리고 일 년이나 더 지난 어느 날 그 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 전화가 누군지 잘 모르는 그 전화가

바로 내 친구가 죽어서 장례를 치른 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고 오열했다.

결혼한 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참 용감하구나!

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나날을 살아내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모든 것을 놔두고 떠날 수가 있었니?

왜 무엇이 그렇게 널 견딜 수 없게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애의 아픔에 한 번도 귀를 기울여주지 못했던

나 자신 때문에 한없는 자책에 시달렸다.

그 애의 사랑스러운 얼굴만 눈가에 어리다 사라지곤 했을 뿐이다.

원통했다. 그렇게 떠나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이였다.


오랫동안 난 그 애를 보내주지 못했다.

새로운 꿈을 안고 시작한 결혼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는 삶을 버렸다.

지금도 가끔씩 그 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생각난다.

힘들었어도 그렇게 사랑했던 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달랐을까? 생각해 본다.

어쩜 그 길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홀어머니와 장남 곁을 지키며 살기엔 그 애가 너무 곱고 여렸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고 한다.

통계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이상 높고 나이가 들수록,

특히 70대 이상의 남자들이 높다고 한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자살에 대한 뉴스를 대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십 대에 삶을 떠난 내 친구도,

십 대에 세상을 버린 여학생들도 저마다

삶의 주역이 되고 싶은 소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 버린 이들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우린 모두 인생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삶을 버렸던 이들도

인생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따뜻하게 그들을 보듬어주는 이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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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삶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주인공일 수 없어서 가슴 아팠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짧은 기도를 드렸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 배경이 되어 주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도 그분들처럼 이제 따뜻한 배경이 되고 싶다.

누군가 삶의 기로에서 뒤척일 때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작은 힘이 되고 싶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친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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