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내 새끼, 아까워서 어떻게 보내냐!”
마흔셋 젊은 아들이 세상을 떨치고 떠나는 것을
붙잡으려 허우적거리며 외마디 절규를 내쏟고 엄마는 혼절했다.
가톨릭 대학교 강남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흰 천에 덮여 침대에 실려 나오는 것이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절세가인(絕世佳人) 타고난 미모와 거칠 것 없는 호방한 성격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곁에 여자들이 들끓었다.
여난(女難)이었다.
오빠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일 년 만에 만난 오빠는 투병에 시달렸던 탓인가?
뼈만 남은 백발이 된 모습에서 마치 신선처럼 신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하며 변해가는 모습이 고통의 흔적은 넘어 마치 세속의 때을 말끔히 씻어 버린 듯 맑고 청결하기까지 해서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슬프기보다 처연했다.
그렇게 잘난 아들이 허망하게 어미를 남겨놓고 훨훨 세상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아이구~우! 내 새끼~이! 아까워서~ 어~어, 아까워서~어~어 어떻게 보내냐?”는
엄마의 절규는 메아리처럼 저승 문전까지 따라갔을 것 같았다.
어설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간호사 출신이었던 올케는
생즙과 채소 중심의 식단으로 간에 무리가 되는 식생활을 고집했다.
오빠가 추어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끓여다 준 음식을 오빠에게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두 여자의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사랑의 방식이 달랐다.
생명보다도 더 아꼈던 아들의 목숨이 스러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한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슬픔이었다.
어떨 때는 오빠가 올케 몰래 엄마에게 달려와
먹고 싶은 음식을 해달라고 해서 먹고 가고는 했다고 한다.
오빠를 살리기 위해 엄마는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올케가 간병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평생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셨던 엄마가 간병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아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회한이 엄마를 더 절규하게 했다.
“이렇게 보낼 거면 먹고 싶다는 거나 실컷 먹여서 보낼 걸….”
엄마의 넋두리는 끝이 없었다.
서러운 엄마의 통곡 소리에 오빠는 어찌 발걸음이 떨어졌는지 모른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관계는
한 남자의 아들과 남편이라는 역할을 두고
태고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의 풀 수 없는 숙제 같은 것이다.
큰 며느리를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던 엄마도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니 며느리가 안중에 없었다.
며느리가 오직 아들에게 잘하나 그렇지 않는지만 관심이 있었고,
남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올케는
이제 죽어가는 남편보다 키워야 할 내 새끼가 더 중요해졌다.
외도로 초혼에 실패한 오빠에게는 전처소생인 아들이 있었다.
새 올케는 처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로 오빠를 놔주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오빠에게 자살하겠다면 협박해서 기어이 오빠를 차지했다.
힘없는 첫째 올케는 한 살 된 아들을 남겨놓고 집을 나갔다.
새 올케와 새살림을 차린 오빠에게 행여 해가 될까 싶어
엄마는 첫 손주를 맡아 키우셨다.
새 올케는 자신 때문에 두 살도 채 안된 나이에
어미 떨어져 할미 손에 자라는 전처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행여 남편이 그 자식에게 눈길이라도 한번 줄까
전전긍긍하며 부자가 대면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오빠는 그 아들을 품에 한번 편하게 안아보지도 못했다.
그 아들 손잡고 놀이공원 한번 가지 못했고, 용돈 한번 편하게 주지 못했다.
마지막 떠나면서 가슴에 한이 된 전처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새 올케의 눈치를 보면서 연락했고,
이십여 년이 지난 뒤에야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올케가 남편을 부르면서 울먹였다.
그리고 오빠는 생을 마감했다.
두 아내와 세 아들을 남겨놓고….
자신만을 바라보던 늙은 노모를 어쩌지도 못하고
엄마는 금쪽같은
내 아들에게 며느리가 한마디라도 할까 싶어서
혹시 전처소생 때문에 문제가 될까 싶어 전전긍긍하셨다.
큰 며느리를 위해서 있는 것, 없는 것,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 바쳤다.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올케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듣기 싫다 너희들이나 시댁에 잘해라.” 하시며 함구령을 내리셨다.
한번 실패한 아들 두 번 실패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의 남편을 빼앗고 남의 아들 부모를 빼앗아
두 아들을 낳고 살던 새 올케의 비극은 ‘인과응보’라 스스로 말했다.
하지만 자기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어미로서
남의 아들과 남의 어미는 이제 관심도 연민도 없었다.
전처소생에게 재산이 갈까 봐 온갖 짓을 다 하는 그녀를 보며
남자가 두 아내에게 다른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의 길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마흔셋 젊은 아들을 떠나보내고도 엄마는 삼십 년도 더 사셨다.
아들을 지키고 싶었으나 지키지 못했던
어미의 삶은 어쩜 빈 풍선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을 잃어버린 올케의 삶은 더 그랬을 것이다.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은 잘못된 선택으로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가엾고 안 됐다.
엄마와 아내는 둘 다 한 남자를 나름대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이다.
사랑을 다 채우지 못한 두 여자와 한 어미의 한은 어쩜 결은 다르지만 같은 아픔이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 올케와의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아이고! 내 새끼, 아까워서 어떻게 보내냐!”
“이렇게 보낼 거면 먹고 싶다는 거나 실컷 먹여서 보낼 걸….”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절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리쳐 울지도 못하는 두 여자의 한은 아직 진행 중이다.
죄송합니다. 어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금요일(21)은 해외여행으로
글을 탑재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돌아와서 더 좋은 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