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이 천당인

부제: 술 석 잔과 뺨이 세대

by 이슬



예로부터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그렇지 않으면 뺨이 세대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대로라면 분명 우리 부부는 술 석 잔은 따놓은 당상이다.


"○○네 아들 결혼한데"
"그래요? 그럼 가야지"


저녁 시간 남편이 내게 불쑥 던진 말이다.

결혼! 청첩장이야 일상사이니 놀랄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들 자녀의 결혼이야기는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한 소식이다.


남편의 군대 동기였던 지인과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중매해서 지금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내 나이 이십 대, 모두들 적령기였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 짝을 찾아 결혼했다.

우리도 그즈음 결혼했고,

남편 군대동기에게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을 소개했다.


둥실둥실하고 성품이 정말 좋은 아가씨였다.



신랑 될 사람은 군 제대하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아가씨는 좋다고 했고, 그들은 결혼했다.

신랑은 계속 석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향인 경주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결혼 후 서로 사느라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만났다.

사실은 잊고 살다 어쩌다 문득 생각나는 정도였다.

우린 광양에 그들은 경주에 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드디어 2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니

그 시절 그때가 영화 속에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다방 같은 곳이었던가?

아가씨를 소개하며 학생신분이었던 신랑감에게

당시 2만 원을 손에 쥐어 주며 아가씨 맛있는 거 사주라며 나왔다.


신랑감은 빼빼 말랐고 신붓감은 퉁실퉁실한 편이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꼭 곰돌이 푸 같았다.

무엇보다 둥글둥글한 성품이

곁에 있는 이를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극 ‘와양 쿨릿(Wayang Kulit)’ (큐(슈국립박물관 전시)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참 잘 살았다.


중매를 세 번 성사시키면 천당 간다는 옛 말도 있다.

짝은 찾는 남녀를 도와준다는 것이 참 귀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나랑 우리 신랑은 천당 갈 티켓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확실하게 세 팀은 우리 덕에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포항, 광양 떨어져 살 때, 수 없이 오갔던 길을 따라

결혼식에 찾아가는 것이 무척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졌다.


진주, 창원, 언양을 거쳐 경주로 들어섰다.


어제는 전국적으로 눈 오고 바람 부는 추운 날이었는데

찬란하게 쏟아지는 태양이 눈이 부셨다.



식장에 들어서니

그들은 아들 결혼식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참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곰돌이 푸같던 그녀의 모습이 참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대학교수로 정년을 한 신랑 아버지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아유 반가워라! " "잘 지냈어요."
오랜만 잡은 손을 놓지 못하며 어깨를 감싸 안아줬다.
" 예쁜 게 잘 산 흔적이 보이네요." "그래요?"
" 며느님. 맞이하시는 것 축하드려요."
" 네. 감사합니다."

작은 결혼식이라 하여 홀 하나에 원탁 테이블이 한 줄에

다섯 개씩 10개가 세팅이 되어 있었다.

테이블당 7~8명 정도의 예상한 듯하다.


테이블에는 참석자들을 그룹별로 분류를 하고

그룹 팻말에 참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안내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안주인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된 것을 보고 서로 의견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단면을 보는 듯해서 참 흐뭇했다.


결혼식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된 것을 보고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남다른 배려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결혼 본식은 아주 간단하게 하고 사진촬영 시간이 끝났다.
식사가 진행 중인데 신랑 아버지가 사회를 보면서 참석자 전원을 소개했다.

참 신선했다.


집안 어른 중 예술가이신 분께서

덕담을 붓글씨로 써서 족자로 만들어 전달해 주셨다.
참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 집안 가풍의 면면을 보는 것 같아 참 보기가 좋았다.

어울림이리는 말이 떠올랐다.


이 장면은 그들이 살아온 여정과

서로를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가가 눈에 보였다.


장남이 아닌데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묵묵하게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와

시부모 모시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맏며느리 역할을 다했다.


그야말로 그 집 식구가 되어 살았던 것이다.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이 깊은 존경과 따뜻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지인 아들 결혼식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아내와 남편의 이중주로 만들어 낸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 배어 있는 결혼이라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예술보다 더 특별한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우리 신랑이 만든 가정의 틀과 풍은 어떤 것이었을까?

반문해 보았다.


지인 아들의 결혼식은 그들의 전 생애의 곳곳 중

가장 특별한 지점을 한 컷, 한 컷스크랩해서 마치 콜라주 하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자녀들을 대했으며,

어떻게 그들의 세계를 연결하며 생을 완성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중매 세 건을 성사시켰으니, 술 석 잔은 받아 마셔도 좋은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다.

누군가 다리가 되어 준 사람 없이 만나고

결혼한 우리는 성공도 내 것, 실패도 내 것이다.


술 석 잔도 내가 내게 사야 하고 뺨 세대도 내가 나를 때려야 한다.


다른 사람 중매해 주고 천당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스스로 만든 가정을 천당으로 만드는 일이다.


죽어서 천당보다는 살아가는 순간순간 천당인 내 가정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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