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꼬여낸 비법

부제: 버림받은 아내

by 이슬


아이 셋을 낳고 이십여 년을 살고도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가 있다.

그 사건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런 일은 자유분방하다는 연예계나 예술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금기의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재벌 총수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라고

세상에 소리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외도와 불륜이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고 만 일들은 흔하다.

어제도 오늘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뭐 별다른 것도 없는 소재이지만 언제나 흥밋거리인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대통령의 딸이었던 아내와 재벌 총수인 남편의 이야기다 보니

화들짝 범인들의 호기심을 뒤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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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어쩜 본처이다 보니 본처 처지에서 피해의식을 함께 느꼈다.

이런 사건을 듣게 되면 여자의 능력, 남자를 사로잡는 능력에

깊은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서 꿰찬

그 여인들의 특별한 비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의 마음을 독차지해서 부와 권력을

한 손아귀에 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마다 거론되는 여인들은 대체로 빼어난 미모를 든다.

꼭 남의 남편을 빼앗은 여인이 아니더라도

권력과 돈을 가진 남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자들에 대한

부러움은 나의 오랜 결핍이다.


그중 대표적인 여인인 클레오파트라가 그랬고 양귀비가 그랬다.

하지만 빼어난 미모가 있음에도

늙고 볼품없는 정부에게 남편을 빼앗겼던 비운의 여인도 있다.

영국 찰스 황태자비 다이애나.

그렇다면 꼭 빼어난 미모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남자를 사로잡은 여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연산군을 한 손아귀에 쥐고 세상을 주물렀던 여인 장녹수다.

서양의 여인들은 주로 귀족 계급이 많았던 반면

동양에 여인들은 상류층은 아닌 여인들이 많았다.


장녹수도 그랬고 양귀비도 그랬다.

조선 후기 명성황후 역시

몰락한 가문의 여식이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기는 흔히 외모나 성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리라 생각한다.

남녀 사이니까 성적인 부분과 매력적인 외모는 물론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한다.


그녀들은 공통으로 예술적인 기능이 뛰어나고

지적인 역량도 높았다고 한다.

또한 상대의 상황이나 마음을 공감해 주는 능력은 물론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해결해서그 어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위에 모든 부분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균열의 틈새로

새로운 이가 들어서게 될 때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결혼할 당시에는

그들도 아마도 대체 불가능한 서로였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사소한 틈에서부터 부부의 이별은 시작된다.

사실 배신은 남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보면 남자의 마음을 꿰차는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의 특별한 비법은 케박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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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게 배우자를 버리는 이들과 보이지 않게 배우자를

간간이, 틈틈이 버리는 이들이 있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보이게 버리는 이가 더 인간적 인지도 모른다.



난 문득 옛 드라마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말 탄 임 따라서 시집가던 날

여기 선가 저기 선가 복사꽃 곱게 피어나던 길

한 세상 살아왔던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더라.”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소복한 여인네가 작은 보따리 하나 안고

시집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윗 시대 여인네들의 숙명 같은 아픔이었다.


일부종사를 여인 내의 삶이라 뼈에 새긴 유교의 가르침은

해방을 맞고 새로운 교육이 물밀듯이 밀려와도 우리 내 의식 속에 내린

그 깊은 뿌리는 생생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영웅은 호색이라며 잘난 남자가 많은 여인을 거느리는 것은

남자다움의 상징이라는 인식 또한 아직 살아있다.

이것은 법이나 도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생태계의 한 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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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아이 셋을 낳았거나 결혼생활이 20년이 넘는 것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현상일 뿐이다.


남자를 후릴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냥 서로 맞았을 뿐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도

순간순간 남편을 떠나고 싶은 충동들이 솟아오른다.

남편 또한 그런 순간이 없겠는가?

그래도 우린 살아가고 있다.

만약 간다고 하면 그를 붙잡아야 할까?

내가 떠난다며 보내주기는 할까?


자기 삶 전체가 담겨 있어서 붙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순간에 마주하면

모든 것이 헛된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비록 누군가 떠난다 해도 함께 살아온 세월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때 남편이었고 영원히 아이들의 아빠인

그가 나를 떠날지라도

내 남편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법으로는 남이 되지만 사실은 남이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아이가 셋인 부부의 진실이다.


이혼이 결정되어 짐을 정리하며 발견한 작품 하나가

여인의 눈시울을 적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사랑해요"하며

가족이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콜라주인 작품을 발견하고

눈물짓던 그녀의 모습이다.


부부의 만남이 가장 질기고 긴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얼마나 좋으면

아이 셋에 이십 년이 넘도록 가꾸었던 가정을 버리고

새 가정에 둥지를 틀었을까?


나 같은 범인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자를 꼬여낸 비법이 있기는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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